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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의 유해성은 더 말해 필요없으니, 일단 이 불타는 종이막대가 고뇌하는 인간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고,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찬찬히 같이 보길 원합니다.





혁명가 체 게바라는 담배를 애찬하는 시를 쓰며 이런 글귀를 남겼습니다. 


"게릴라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안거리는 담배 한 대이다. 휴식시간의 담배 한 대는 고독한 전사의 둘도 없는 친구다"


노래로 옮겨와볼까요. 이제는 고인이 된 김광석의 대표작 '서른 즈음에' 가사를 떠올려 보시죠.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뿜는 담배연기처럼. 작기 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 


서른을 맞는 초조함을 달래준 것은 친구도 부모도 아닌 담배였습니다.     


3040이 입대 전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를 불렀다면 기성세대들은 최백호의 '입영전야'를 부르며 담배를 찬양했습니다. 아쉬운 밤이든 흐뭇한 밤이든 뽀얀 담배연기는 피어올랐고 그 사이로 둥근 당신의 얼굴이 보였을 겁니다.


오랜 시간 인류의 벗이었지만 어찌됐건 담배가 금기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투쟁의 상대 앞에서 담배를 꺼내무는 것, 담배라는 단어를 앞에 내세우는 건 그래서 '저항'이 됩니다. 





허락되는 것보다 금지되는 것이 많았던, 민주화투쟁이 한창이었던 1986년 송창식은 '담배가게 아가씨'란 노래를 발표합니다. 금기시된 언어를 마구 휘둘러대는 쾌감, 그것은 '자유'였습니다.


서민들의 비틀거리는 삶을 지탱해준 담배. 누릴 것이 많은 최고권력자에게 담배는 어떤 물건이었을까요. 





조선왕조 최고의 개혁군주였던 정조도 담배에 시름을 덜었습니다. 지독한 책벌레였던 정조는 책에 빠져 밤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고 합니다. 정조의 불면증을 다스려준 게 담배였습니다. 정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치의 득과 실을 깊이 생각할 때에 뒤엉켜서 요란한 마음을 맑은 거울로 비추어 요령을 잡게 하는 것도 그 힘이며, 갑이냐 을이냐를 교정하여 추고할 때에 생각을 짜내느라 고심하는 번뇌를 공평하게 저울질하게 하는 것도 담배의 힘이다"


담배를 대하는 태도를 봐도 정조는 개혁군주다웠습니다. 신분제사회였던 조선시대, 누구나 다 똑같이 피울 수 있는 담배가 양반들에게는 꽤나 불편하게 보였나봅니다. 실학자 유득공이 서울의 세시풍습을 기록한 책 <경도잡지(京都雜志)>에는 "신분이 낮은 자는 양반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신분이 낮은 자가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엄하게 다스리고, 지체 높은 관리가 지나갈 때 담배를 피우면 잡아다 벌을 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조는 신분이 낮은 자라도 길에서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게 명을 내렸습니다. 담배로 '평등'을 실현한 셈입니다. 담배 얘기를 하면서 왜 제가 평등을 떠올리게 됐을까요. 최근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담뱃값 인상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현행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는데요. 


담뱃값 인상, 역대 정권이 수차례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담뱃값은 2004년 국산 담배 기준으로 2000원에서 2500원으로 오른 뒤 9년째 그대로입니다. 왜 그럴까요. 담배로 거둬들이는 세금이 역진적 성격을 띠기 때문입니다.


담뱃값은 '평등'합니다. 소득수준에 따라 담뱃값을 달리 물진 않으니까요. 고급담배라고 해서 부가가치세를 물리는 것도 아닙니다. 담배 소비는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에게 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담배소비가 가격에 비탄력적인 특성을 보이는 것도 역진적 성격을 강화합니다. 





최근 담배 사재기가 기승이라고 합니다. 이걸 예로 들어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역설적으로 이게 바로 가격에 비탄력적인 담배 소비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품목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값이 대폭 오르면 초기에 일시적으로 흡연율에 영향을 주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효과가 반감돼 결국 서민가계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없는 사람 지갑 털어 나라 곳간을 채우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담뱃값을 올려 흡연율을 떨어뜨리고 복지재원을 확충한다는 취지까지  잘못됐다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물가에 미치는 파급력, 그리고 이를 추진하는 의도의 순수성이겠죠. 


국산 담배가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가중치 비중은 0.5%, 외제 담배는 0.35%입니다. 담배의 가중치는 481개 소비자물가 조사품목 가운데 20번째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정확한 수치를 산출했을 때 어느 정도 물가 상승요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소득층 구매 비율이 높은 걸 감안하면 서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작다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복지사회로 나아가자고 하면서 다른 증세에 대한 논의는 논외로 두고, 노동 문제를 외면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담뱃값 인상정책에 뜻을 같이할 수 있을까요.





제가 담배에게 허락한 이름들을 순서대로 써봅니다. 위로, 저항, 자유, 평등...

그 마지막 단어에 차마 꼼수라는 단어는 쓰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말없이 담배 한까치 꺼내 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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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