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트럼프 ‘친환경 퇴출’ 시동…기후협약 흔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28일(현지시간) 워싱턴의 환경청 청사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규제한 전임 정부의 정책을 폐기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광산 노동자들이 둘러서서 박수를 치고 있다. 워싱턴 |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28일(현지시간) 워싱턴의 환경청 청사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규제한 전임 정부의 정책을 폐기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광산 노동자들이 둘러서서 박수를 치고 있다. 워싱턴 |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워싱턴의 환경청(EPA) 청사에서 광부들에게 둘러싸여,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들을 무효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전 세계적인 노력에 동참하지 않고, 국내 석탄산업을 되살리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트럼프로서는 대선 공약을 지킨 것이지만 파리 기후변화협약 등 온실가스 배출을 막으려는 세계의 노력은 위기에 처했다.


트럼프는 이날 서명식을 하면서 직접 환경청 관리들에게 전임 정부의 ‘클린 파워 플랜’을 폐기하는 법절차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오바마 정부는 2030년까지 발전소의 탄소배출량을 32% 줄인다는 목표 아래, 석탄발전소 수백개를 문닫게 하고 새 발전소 건설을 중단시켰다. 대신 바람과 태양열을 이용한 친환경 발전 비중을 높였다. 트럼프는 정반대로 예전처럼 석탄연료를 마음껏 쓸 수 있도록 했다. 행정명령에는 석유 및 석탄산업의 메탄가스 방출량 기준을 완화하고 국유지 내 석탄채굴을 허용하는 내용도 담겼다. 트럼프는 광산노동자들을 향해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는가? 당신들은 이제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아직 파리 기후변화협약까지 탈퇴하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정책을 뒤엎음으로써 사실상 탈퇴 의사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 없게 됐다. 2015년 협약 체결 당시 오바마는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26%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클린 파워 플랜’은 이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다. 미국의 행보는 중국을 포함해 인도, 브라질 등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로버트 스타빈스 하버드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최악의 경우 협약 자체가 어그러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전까지의 기후변화 대응체제에 동참하길 거부했던 중국과 미국이 나란히 가입하면서 파리 협약은 탄력을 받았다. 두 나라는 지난해 9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막을 앞두고 협약을 비준했다. 배출량 3위 국가 인도가 바로 다음달 2일 협약을 비준했고, 유럽연합(EU)과 캐나다도 뒤를 이었다. 55개국 이상이 비준하고 이 국가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전체의 55% 이상이 돼야 한다는 기준이 충족되면서 협약은 지난해 11월 발효됐다.


유엔과 파리협약의 주역들은 트럼프 정부를 일제히 비난했다. 에릭 솔하임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은 “기후변화 문제가 어느 때보다 심각한 지금, 어느 나라도 노선을 바꿀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파리협약 때 프랑스 협상대표였던 로랑스 투비아나는 “협약을 이행하는 국가들은 수없이 많다”면서 미국을 비판했다.


하지만 영국 가디언은 이날 유럽기후리더십 조사를 인용해 유럽국들조차도 사실은 협약을 잘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사에 따르면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40% 줄이겠다는 EU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 나라는 스웨덴과 독일, 프랑스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기후리더십은 폴란드, 체코,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 나무를 많이 심어 그럭저럭 약속을 이행하고 있지만 많은 나라들이 협약의 허점을 이용해 온실가스 배출량 규정을 어기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