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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이슬람 모독 ‘아혹 재판’ 인도네시아 미래 걸려

이슬람 경전인 코란의 구절을 인용해 신성모독을 했다는 이유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전 주지사 바수키 차하야 푸르나마(일명 아혹)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자카르타 지방법원은 지난 9일 신성모독 혐의로 기소된 아혹 주지사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하지만 재판부가 무리한 해석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소수자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도를 탄압하고 있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비교적 포용적인 문화를 자랑하던 민주 이슬람 국가 인도네시아도 급진 이슬람주의에 매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된다.



아혹은 재선을 준비하던 지난해 9월 자카르타 인근 플라우 스리부 리젠시 주민들과 대화를 하던 중 코란을 언급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코란은 유대인과 기독교도를 지도자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는 말에 “해당 구절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사람들에게 속았다면 나에게 투표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것이다.



아혹 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주지사가 신성모독 혐의로 재판을 받기 위해 지난 9일 자카르타 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 자카르타|AFP연합뉴스

아혹 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주지사가 신성모독 혐의로 재판을 받기 위해 지난 9일 자카르타 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 자카르타|AFP연합뉴스


무슬림 반대 여론으로 주지사 재선 실패



아혹 주지사의 재선에 반대해 온 이슬람 강경파는 그가 코란 자체를 부정했다면서 자카르타 도심에서 연일 10만명 규모의 시위를 벌였다. 이로 인해 지난해 초만 해도 60%에 육박하던 아혹 주지사의 지지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지난달 19일 열린 주지사 선거 결선투표에서 무슬림 후보에게 큰 표차로 패배했다. 아혹은 1차투표에서는 1위였지만 무슬림들의 반대여론이 결집하면서 재선에 실패했다.



이후 진행된 재판은 아혹에게 더 가혹했다. 재판부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구형한 검찰보다 더 강하게 대응했다. 아혹 지지자들은 재판부가 무슬림 강경파가 주도한 마녀사냥에 편승해 무리한 판결을 내렸다고 보고 있다. 아혹은 판결 직후 동부 자카르타 치피낭 교도소로 옮겨져 수감됐다. 아혹 측은 바로 항소한다는 계획이지만 인도네시아 법체계상 최소 20일 이후에나 관련 절차를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혹 지지자 수천 명은 연일 자카르타 시청과 발리섬 곳곳에서 사흘째 항의집회를 벌이고 있다. 10일에는 발리주 젬브라나 지방법원 홈페이지가 해킹돼 아혹 주지사의 무죄를 주장하는 내용으로 메인 화면이 변경되기도 했다. 11일 현지 유력주간지 템포 웹사이트도 해킹돼 아혹 주지사의 석방을 요구하는 글이 적혔다.



강경파 앞세운 기득권 세력의 반격?



현지 전문가들은 주지사 선거에 나선 상대 후보 진영이 정치적 의도로 논란을 부풀린 측면이 크다면서 아혹의 발언은 신성모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치권 일각에선 조코 위도도(일명 조코위) 대통령과 아혹으로 대표되는 신진 개혁세력에 대한 기득권층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빈민가 출신으로 중앙 정치무대에 기반이 없는 조코위 대통령이 독자적 정치세력을 형성하는 데 위기감을 느낀 기득권 세력이 무슬림 강경파를 배후조종해 그의 정치적 동반자인 아혹을 축출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아혹에 대한 실형선고를 예측하기도 했다. 일단 신성모독으로 재판에 회부되면 무죄를 받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 인도네시아 지부의 안드레아스 하르소노는 지난해 아혹이 기소됐을 때부터 유죄를 예상했다. 수카르노 집권기인 1965년부터 신성모독이 사법부의 판단영역이 된 뒤 50년 넘는 기간 동안 200여개 재판 결과를 보면 무죄 판정을 받은 경우는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지금으로부터 49년 전인 1968년 나온 판결이다. 그는 “아혹은 결국 감옥생활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아혹의 신성모독죄 실형선고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지난 9일 아혹 주지사가 수감된 치피낭  교도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자카르타|AFP연합뉴스

아혹의 신성모독죄 실형선고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지난 9일 아혹 주지사가 수감된 치피낭 교도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자카르타|AFP연합뉴스



BBC, 뉴욕타임스, 각종 외신들까지 나서 아혹 재판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그만큼 인도네시아가 종교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 인구로만 따지면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이슬람국가다. 2억6000만 인구의 약 87%가 이슬람을 믿는다. 기독교도는 6%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수피즘의 신비주의적 전통을 수용해 독특한 이슬람 문화를 만들어냈으며, 민중운동 성격이 강해 타종교와 강하게 대치하지도 않았다. 신자 비율로만 보면 이웃국가인 말레이시아(55%), 브루나이(65%)보다 높지만 이들 나라와 달리 이슬람을 국교로 삼지도 않는다.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은 그렇게 구속력이 강한 종교가 아니다. 아랍 상인들을 중심으로 아시아에 이슬람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인들은 기존의 토속신앙 및 힌두·불교적 관습을 융합했다. 정해진 기도 횟수, 의상 착용 등 이슬람의 율법을 원리원칙대로 따르지도 않는다.



무슬림들의 분포가 지역에 따라 매우 달랐던 것도 이슬람이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요인이다. 힌두 전통이 강한 발리는 비이슬람 비율이 94%나 된다. 동부 누사떵아라에서도 이 비율은 91%이고, 술라웨시 북부도 54%로 무슬림이 아닌 사람이 더 많다.



비무슬림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 산발적으로 분포해 있다보니 정치지도자들도 이슬람 율법 적용에 적극적이지 않다. 과거 수마트라섬 북부 아체주에서 이슬람법을 적용하려고 했으나 번번이 중앙정부의 반대에 부딪혔다. 기독교도들이 많은 동부지역에서 분리독립을 주장할까봐 우려했기 때문이다. 정치지도자들은 이슬람 국가 건설보다 인도네시아의 통합을 더 중시했다.



발리주 젬브라나 지방법원 홈페이지가 지난 10일 해킹당한 모습. 신성모독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아혹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 자카르타|AFP연합뉴스

발리주 젬브라나 지방법원 홈페이지가 지난 10일 해킹당한 모습. 신성모독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아혹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 자카르타|AFP연합뉴스



이슬람 세력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은 것도 이슬람이 구심점 역할을 하는 걸 가로막았다. 약 6000만명의 신도를 양분해 이끄는 나흐다툴 울라마와 무함마디야는 단체 결성 이후 줄곧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율법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흐다툴 울라마는 코란과 하디스 외에도 하나피, 샤피이, 말리키, 한발리 등 4대 법학파의 율법에 많은 비중을 둔다. 반면 무함마디야는 코란과 하디스 외에 다른 해석은 거부한다.


하지만 아혹의 신성모독 발언을 두고 연일 대규모 반대시위가 벌어지고 지난해 1월 자카르타 시내 한복판에서 무차별 총격테러가 일어났듯이 일부 무슬림들의 과격한 주장과 행동은 언제든 터져나올 수 있다. 아직 확실히 세력을 구축하지 못하고 이슬람국가(IS)의 쇠퇴로 더욱 주춤하고는 있지만 제마 이슬라미야(JI) 같은 극단주의 무장단체에 사회불만세력들이 포섭될 가능성도 여전하다. 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국이지만 비교적 온건한 성향으로 안전지대로 여겨져 온 인도네시아마저 극단적인 이슬람 세력이 득세한다면 아시아 지역의 불안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에 근거지를 둔 이슬람 무장단체와 연계해 실질적인 물리적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과 민주주의 공존 시험대 올라



인도네시아 정치권은 이슬람과 공존해 왔다. 이슬람이 처음 전파됐을 때도 군주들은 이슬람 수피즘이 왕권의 카리스마를 더욱 강화한다고 생각해 탄압하지 않았다. 군부정권에서도 이슬람은 종교라기보다는 풀뿌리 운동으로 자리매김하며 민중 속으로 융화됐다. 종교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진다면 이슬람과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양립할 수 있다는 증거로 환영받았던 인도네시아의 미래도 낙관할 수만은 없다.







최근 아혹 사태를 놓고 보면 이슬람 강경파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정치지도자들이 과격한 주장과 배타적인 자세를 오히려 부추기는 모양새다. 하지만 아혹에 대한 가혹한 처분이 소수자인 기독교도·화교들에 대한 탄압으로 비쳐질 경우 거센 반발과 갈등, 혼란은 불보듯 뻔하다. 아혹에 대한 최종 판결은 인도네시아가 앞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오히려 뒷걸음질칠 것이냐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