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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폴란드·이스라엘 ‘홀로코스트 갈등’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위치한 폴란드 대사관 입구에 18일(현지시간) 나치를 상징하는 문양인 하켄크로이츠가 그려져 있다. 텔아비브 | EPA연합뉴스



폴란드 국회가 지난달 통과시킨 홀로코스트법을 두고 이스라엘 정부와 갈등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주재 폴란드 대사관 대문에 나치를 상징하는 갈고리십자 문양과 ‘모독’ ‘살인자’라고 쓴 낙서가 발견돼 경찰이 조사에 착수했다고 하레츠 등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홀로코스트 가담자 중에는 유대인도 있다고 암시하는 발언을 하고, 이에 이스라엘 정부가 항의한 지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다.


전날 독일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한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이스라엘 기자로부터 “내 어머니가 폴란드인 이웃의 밀고로 게슈타포(나치 비밀경찰)에 체포될 뻔했다고 이야기하면 범죄자가 되냐”는 질문을 받았다. 모라비에츠키는 “나치뿐만 아니라 폴란드 가해자, 유대인 가해자가 있었다고 말해도 범죄로 간주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유대인 가해자’ 언급에 대해 “터무니없는 발언으로 얼마나 역사에 무지한지 보여준다”고 비판하고 폴란드 정부에 정식 항의했다.


폴란드 정부는 폴란드인의 홀로코스트 가담을 부인하거나 유대인 희생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뜻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홀로코스트법 자체가 유대인들이 폴란드인에 의한 홀로코스트 피해 사실을 밝히기 어렵게 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폴란드 땅에 세워진 나치의 유대인 집단처형장을 폴란드 집단처형장이라고 하거나 폴란드가 나치에 협력했다고 말하는 경우 최대 징역 3년까지 처해질 수 있다.


2016년 집권한 극우 민족주의 정당 법과정의당(PiS)이 주도해 통과시켰다. 폴란드인들이 앞장서 유대인들을 학살했던 예드바브네 마을 사건처럼 아픈 역사나 진실은 외면하면서 왜곡된 자부심을 심어준다는 비판을 받는다. 다른 민족과 종교를 배척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폴란드에 사는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법 논란이 증폭되면서 반유대주의가 거세질까 우려하고 있다. 법과정의당 집권 이후 인종혐오 발언의 희생양이 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AP통신은 극우 정치평론가들이 국영방송 토크쇼에 나와 가스실을 두고 농담하는 등 유대인을 대놓고 조롱해도 처벌은커녕 환영받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반유대주의를 우려하며 홀로코스트법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반유대 정서를 자극할 뿐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폴란드 대통령 고문 안제이 지베르토비치는 “이스라엘의 부정적인 반응은 홀로코스트 당시 무력했던 자신들에 대한 수치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유대인 단체들이 전쟁 전 공산주의자들에게 빼앗겼던 유대인 소유 토지에 대한 반환을 주장하는 것처럼 폴란드로부터 돈을 뜯어내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유대인 단체 활동가들은 폴란드 거주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이민 문의가 최근 급증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