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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표절이 뭐길래

Lana Del Rey의 말을 다시 살펴보면 혹시 모를 소송전에 대비한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그의 트윗은 역대 표절관련 소송에서 쟁점이 됐던 요소들을 다 짚고 있으며 향후 표절로 판정이 날 경우 책임을 줄이려는 의도의 문구들이 보인다. 그저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썼다고 보기 힘든 이유다.

'Creep'에 영향받지 않았다는 주장은 혹시 표절로 판정이 나더라도 고의성이 없었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한 논리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른바 "무의식적인 표절"이라는 건데 그렇다 하더라도 저작권 수익을 지켜내기는 어렵다. 표절 소송은 의도보다는 곡이 얼마나 유사하느냐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George Harrison과 The Chiffons 간 법적 분쟁이 대표적인 예다.


< George Harrison >

Harrison은 1970년 발표한 싱글 'My Sweet Lord'로 The Beatles 출신 중에서는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듬해 2월 The Chiffons의 'He's So Fine' 발행사인 Bright Tunes Music은 표절소송을 제기했다. 1976년에서야 본격적으로 법정 싸움이 시작됐는데 그 사이 The Chiffons는 재판을 앞두고 Harrison의 표절혐의를 명백히 하려는 의도로 자신들의 노래에 'My Sweet Lord' 가사를 얹은 버전을 녹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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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Chiffons >

Harrison은 법정에서 'Oh Happy Day'의 허밍부분 멜로디를 참고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무의식적인 표절"이라고 판결 내렸다. 1981년 첫 판결 시 벌금은 약 160만달러였는데 나중에 60만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전 매니저였던 Allen Klein이 Bright Tunes Music을 사들이고 'He's So Fine'을 Harrison에게 파는 협상을 중재한 덕분이다. 벌금 관련 소송은 1998년까지 이어졌고 미 사법부 역사상 가장 긴 재판 중 하나로 기록됐다.
Harrison은 나중에 자서전 "I Me Mine"에서 두 곡의 유사성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My Sweet Lord'가 수많은 헤로인 중독자들의 목숨을 구했다는 것이다. 표절 낙인이 찍힌 곡의 가치를 되살리고 표절에 고의성은 없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호소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소송이 역사적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무의식적 표절"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고, 이후 표절 소송에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표절 관련 처벌에 있어 더 이상 의도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오직 얼마나 비슷하냐 그렇지 않냐 만이 중요한 기준이 된 것이다.

< Led Zeppelin >

존경의 표시인 오마주 차원에서 비슷하게 곡을 썼다 주장해도 통하지 않는 사례가 있다. Led Zeppelin은 1972년 2집 수록곡 'Bring It On Home' 표절 의혹으로 법정에 섰다. 시카고 블루스의 장인 Willie Dixon은 1966년 Sonny Boy Williamson에게 준 동명의 곡을 베꼈다고 주장했다. Led Zeppelin의 Jimmy Page는 오마주 의미로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가져다 썼다고 주장했지만 Dixon은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 Willie Dixon >

싸움은 법정 바깥에서 해결됐다. 정확한 비율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Led Zeppelin 측은 곡 수익의 일정부분을 Dixon 측에 지불하기로 했으며 작곡가 크레딧에 그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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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의도와 상관없이 표절 소송의 핵심은 곡 구조의 유사성이다. Radiohead 측에서 소를 취하했지만 만약 본격적인 소송전에 갔더라면 Lana Del Ray 측은 상당히 불리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곡의 유사성을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 되는 멜로디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의 곡 'Get Free'는 B플랫키로 쓰여졌는데 전문가들은 'Creep'처럼 G키로 바꿔서 악보를 그릴 경우 음정이나 음의 지속시간이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항간에 제기됐던 비슷한 코드전개(I-III-IV-iv)는 자주 쓰이는 전개라 오히려 문제될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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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 Free Get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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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eep 19금 Creep
    
Lana Del Ray는 'Creep'에 영향받지 않았으나 문제가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아 저작권 수익의 40%를 지불하기로 했는데 Radiohead 측에서 끝까지 100%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Lana Del Rey가 트윗으로 이미 표절을 인정하고 있으며 합리적인 수익료 배분 비율을 제시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렇게 고도의 언론전을 펼치는 것은 앞서 수익 100% 지불 사례가 있어 조바심에서 나온 행동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Verve는 'Bitter Sweet Symphony'(1997년) 수익 전부를 The Rolling Stones에 지불하고 있다. 이 곡은 The Rolling Stones의 'The Last Time'의 관현악 연주파트 일부를 샘플링했다. Verve는 샘플링 대가로 저작권 수익의 50%를 지불하기로 합의하고 곡을 발표했다.
여기서 Allen Klein이 다시 한번 등장한다. The Rolling Stones의 매니저였던 그는 Verve가 약속했던 것보다 많은 파트를 가져다 썼다며 Keith Richards와 Mick Jagger를 대신해 소송을 제기했다. 실제 샘플링된 레코드의 원본 소유자인 The Rolling Stones 전 매니저 Andrew Loog Oldham까지 1999년 소송을 제기하고 승소하면서 Verve는 곡에 대한 소유권을 모두 빼앗겼다. 당시 나이키 광고음악으로 쓰이며 많은 수익을 거뒀지만 Verve 손에 쥐어지는 것은 없었다.

작곡가 크레딧에는 Verve 멤버 Richard Ashcroft는 물론 Keith Richards, Mick Jagger가 동시에 이름을 올렸다. 'Bitter Sweet Symphony'가 이 세 명의 작곡가 크레딧으로 그래미상 최우수 노래상에 노미네이트 된 것은 아마도 Ashcroft에게는 무척 큰 치욕이었을 것이다.
Verve가 샘플링한 파트는 사실 오케스트라 편곡자 David Whitaker가 쓴 부분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크렛딧에서 찾아볼 수 없다. 결국 표절소송도 힘 센 사람이 승자가 되는 싸움일까. Verve의 베이시스트 Simon Jones는 The Rolling Stones를 가리켜 "그들은 우리 레코드가 얼마나 잘 팔리는지 보더니 전화를 걸어와 로열티 100%를 내놓든지 아니면 매장에서 레코드를 다 치우라고 말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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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Last Time The Las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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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Last Time The Last Time
    
억울한 걸로 치면 'Blurred Lines'의 공동 작곡가로 이름을 올린 Robin Thicke와 Pharrell Williams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Marvin Gaye 유족들은 'Got To Give It Up'을 표절했다고 주장했으며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Thicke와 Williams에 530만 달러 보상금, 저작권 수익 50%를 지불하라고 판결 내렸다.

< Marvin Gaye >

이 판결은 음악계 종사자들로부터 매우 나쁜 선례로 평가 받는다. 두 곡은 멜로디는 물론 코드전개상 유사하다고 볼 만한 부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것은 편곡이었다. 삐걱대는 워킹 베이스, 희미하게 들리는 잡담소리, 심지어는 카우벨 소리까지 표절요소로 고려됐다. 재판부는 Thicke와 Williams가 Gaye 곡의 바이브, 이른바 분위기를 흉내 냈다고 판단했다. 이전까지 바이브는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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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니면 확실히 이 판결이 영향을 준 것일까. Mark Ronson이 Bruno Mars와 함께 부른 'Uptown Funk'(2014년)은 발표 당시부터 현재까지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Ronson을 비롯해 Jeff Bhasker, Philip Lawrence 등 공동작곡가들이 영향을 인정하는 곡은 래퍼 Trinidad James의 'All Gold Everything'뿐이다. Ronson 측은 곡 발표 전부터 훅 부분에서 이 곡에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저작권 수익의 18%를 지불한다고 설명했다.

< The Gap Band >

하지만 1970년대 펑크(Funk) 히어로 The Gap Band('Oops Upside Your Head', 1979년)부터 1980년대 여성 랩트리오 The Sequence('Funk You Up', 1979년), 일렉트로 훵크 밴드 Collage('Young Girls', 1983년), Zapp('More Bounce To The Ounce', 1980년)에 이르기까지 네 팀이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중 The Gap Band만이 2015년 법정 밖에서 합의를 봤다. Ronsos 측은 저작권 수익의 3.4%를 지불하기로 했다.

< Zapp >

'Blurred Lines' 판결 이후로 표절소송을 제기하는 이유는 확실히 다양해졌다. 멜로디, 코드 전개 등만이 표절 사유로 제기되지 않는다. Collage는 Ronson 측이 자신들의 곡인 'Young Girls 주요 악기연주의 특징과 테마를 마음대로 가져다 썼다고 주장했다. Zapp은 본인들 곡의 신스 그루브가 'Uptown Funk'의 펑키한 그루브의 토대가 되었다며 표절소송을 제기했다.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앞으로 표절소송의 쟁점이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대폭 늘어나게 될 것이란 점이다. 동시에 어떤 결론이 나든 이에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될 것이란 점도 염려된다. 어떤 논쟁이든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준은 명확하고 간단할수록 좋다. 표절논쟁이 그 반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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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nk You Up Funk You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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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재

경향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