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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폴 사이먼, 투어가 끝나고 난 뒤

Paul Simon은 Art Garfunkel과 듀오를 이뤄 1964년 [Wednesday Morning, 3AM] 앨범을 내놓으며 뮤지션 커리어를 시작했다. Simon이 직접 만든 곡은 5곡밖에 되지 않았고 히트하지도 못했다. 나중에 큰 스타덤을 안긴 'The Sound Of Silence'의 초기 어쿠스틱 버전이 수록돼 있다.

첫 앨범 실패에 낙담한 Simon은 곧장 유럽으로 떠났다. 프랑스, 스페인, 영국에서 버스킹을 했다. 다리 밑에서 잠을 잤고, 그곳에서 첫번째 뮤즈 Kathy Chitty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는 1965년 솔로앨범 [The Paul Simon Songbook]을 내놓았다. 'I Am a Rock', 'Kathy's Song' 등 훗날 팬들의 사랑을 받은 곡들이 다수 실렸다. 라이너노트에는 재능 없는 자신에게 낙담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하지만 Simon은 다른 뮤지션들과 활발하게 교류했고, 공연에서 꽤 많은 돈도 받는 재능있는 뮤지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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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Am A Rock I Am A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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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thy`s Song Kathy`s Song
    
미국에 돌아와서는 Bob Dylan 등과 작업한 프로듀서 Tom Wilson과 음반작업을 했다. 'The Sound Of Silence'를 스튜디오에서 다시 녹음하는 등 전작 [Wednesday Morning, 3AM]을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작업이었다. 'The Sound Of Silence'는 싱글로 발매돼 차트 넘버원을 차지했다. 성공가도의 시작이었다.

< [Sounds Of Silence] & [Bookends] >

Simon & Garfunkel은 1966년 2집 [Sounds Of Silence]을 발표했다. 수록곡 중 3곡이 차트 톱텐에 올랐다. 창작력도 왕성해 그해 말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을 연달아 발표하고, 1968년에는 [Bookends]를 내놓았다. 이 두 앨범 수록곡 중 일부는 Dustin Hoffman이 주연한 영화 "졸업"의 사운드트랙으로 쓰이며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다. 기량이 절정에 달했을 때 The Beatles가 그랬던 것처럼 듀오의 팀워크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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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erica 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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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rs. Robinson Mrs. Rob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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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는 1970년 마지막 앨범이 된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냈다. 가스펠이 음반 전반의 무드를 장악한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1960년대생 청소년들의 송가가 됐다. Simon은 'El Condor Pasa'에서 알 수 있듯이 남미음악에 심취해 있었고 Garfunkel은 영화판을 기웃거렸다. 헤어지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이 앨범으로 듀오는 그래미 트로피를 6개나 거머쥐었지만 결국 결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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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cilia 19금 Ceci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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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Boxer The Box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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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은 1972년 발표한 솔로앨범 [Paul Simon]에서 레게까지 실험하는 등 듀오 시절과 완전히 다른 음악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듬해 발표한 [There Goes Rhymin' Simon] 앨범에서는 히트 싱글들이 쏟아져 나왔고, 1975년작 [Still Crazy After All These Years]로는 그래미 주요부문상인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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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dachrome* Kodach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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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뮤직을 제대로 실험한 1986년작 [Graceland]는 Simon을 거장 반열에 올려놓았다. 1980년대 Simon은 아프리카, 브라질 음악에 매료돼 있었다. 결국 198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건너가 앨범작업을 하기에 이른다. 앨범은 록은 물론 텍스멕스, 줄루족의 합창곡, 음바캉가 등 다양한 요소들을 뒤섞었다. 이제껏 영미권 음악들에서는 들어볼 수 없었던 신세계였다. Simon은 남아공에서 평생 음악의 동반자가 된 그룹 Ladysmith Black Mambazo도 만났다.
이 앨범은 남아공의 악명 높은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보이콧 운동이 팽배하던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도 눈여겨볼 만하다. 예술가의 창작영역에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 옳은 것인가, 어디까지 도덕적 책무를 지울 것인가에 대한 논란을 촉발시켰기 때문이다. Simon은 순전히 자신의 예술적인 욕구에 충실했다. 명반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앨범 발매 25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 "Under African Skies"는 선댄스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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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은 1990년에도 남미음악에 영향 받은 [The Rhythm Of The Saints]를 내놓는 등 월드뮤직과 끈을 놓지 않았다. 평단의 반응은 예전만 못했지만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뒀고 그래미 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1997년에는 넘치는 재능을 브로드웨이에서 펼쳐보이기도 했다. Simon이 곡을 쓰고 연출까지 한 "The Capeman"은 68차례 공연됐고, 토니상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2000년대에도 이렇다 할 슬럼프 없이 내놓는 앨범마다 성공을 거뒀다. Garfunkel과 앙금을 털어내고 투어공연에 나서기도 했다. 2014년에는 Sting과 함께 1년동안 투어공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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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ld 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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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utrageous Outrage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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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Afterlife The After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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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write Rewrite
    
Simon은 세 번째 부인인 싱어송라이터 Edie Brickell과 사이에 자녀 3명을 뒀다. 레코딩 작업이 없을 때면 아들의 야구팀을 코치할 정도로 자상한 아버지다. 이제 쉴 때가 된 걸까. 

2016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3살 때 곡을 쓰는 뮤지션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후로 60년 동안 이 작업을 하고 있다. 그때 13살짜리 아이는 지금도 나에게 '다음엔 뭘 할 거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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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Werewolf The Werew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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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stband Wristband
3
    
박효재

경향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