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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럽 ‘좌파 정치’ 설 땅을 잃어간다



이탈리아 총선은 지난 5일(현지시간) 개표 결과 극우·포퓰리즘 정당의 승리로 끝났다. 중도좌파 성향의 집권당인 민주당 마테오 렌치 대표는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서유럽 좌파진영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이탈리아까지 우파가 득세하면서 유럽에서 좌파가 완전히 몰락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 내 좌파 정당의 입지는 최근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중도좌파의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계승하는 프랑스·네덜란드의 사회당 모두 지난해 대선에서 참패했다. 독일에서는 지난해 9월 총선 결과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일약 제3당으로 의회에 입성했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지율은 창당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북유럽 국가에서도 최근에는 20~30대에서만 좌파 정당에 대한 지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8개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좌파가 집권한 나라는 스웨덴, 그리스, 포르투갈,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몰타 등 6개국에 불과하다. 좌파가 몰락한 배경에 이목이 집중된다.


2000년대 들어 이념적 기반인 사민주의 전통이 제대로 계승되지 않으면서 균열이 시작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민주의는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되 전적으로 시장에 맡겼을 때 부작용을 인식하고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세금을 더 걷는 만큼 복지를 늘렸다. 고속성장보다는 안정적인 성장을 선호한다. 하지만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 정부, 독일 사민당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신자유주의를 껴안으며 ‘제3의 길’을 주창했다. 후임 정부들은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지목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닥뜨려야만 했다. 이전 정부에서부터 점차 약화된 사회안전망은 저학력·저소득층, 노동자 등 좌파 정당 지지층을 지켜주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좌파 정당에 대해 전통적 지지층이 실망하고 등을 돌리게 됐다고 분석한다.


경제난에 더해 시리아 내전 이후 2015년부터 본격화된 난민 위기는 유럽 각국에 극우·포퓰리즘이 확산되는 기폭제가 됐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난민들까지 들어와 정부 예산을 갉아먹고 자기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불만이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사민주의 전통이 강한 북유럽에서조차 좌파의 입지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덴마크 사민당은 2015년 총선에서 예상과 달리 제1당을 차지하지 못했다. 핀란드 사민당은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현재 북유럽에서 좌파가 집권하고 있는 나라는 스웨덴이 유일하다.


EU 창립멤버로 유럽통합에 우호적이었던 이탈리아까지 반EU·극우·포퓰리즘으로 기울면서 독일·프랑스 등이 주도하는 유럽통합 진영은 추진력을 잃게 됐다. 어떤 파장을 미칠 것인지와는 상관없이 극우·포퓰리즘의 정치구호가 정권을 잡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게 증명되면서 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다음달 헝가리 총선은 물론 내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극우·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좌파 정당들은 노동자 권리, 복지를 강조하는 등 본래 색깔을 더욱 선명히 드러내면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EU의 긴축재정을 거부하는 그리스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정부는 2015년 9월 조기 총선에서 다시 승리했다.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치러진 지난해 9월 총선에서 부자 증세, 최저임금 인상 등 노선에 충실한 공약을 제시하며 선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