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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2년 만에 접는다


세계 최초로 중앙정부 차원에서 기본소득 실험에 나섰던 핀란드가 내년 1월을 끝으로 실험을 중단한다고 23일(현지시간) 가디언 등이 전했다. 핀란드 정부가 기본소득을 대체할 다른 사회보장제도를 검토하는 등 사실상 실패로 판단하면서 앞으로 기본소득 실험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핀란드 사회보장국(KELA)은 내년 1월 종료되는 기본소득 실험을 2년 연장하고, 실험 대상자 확대를 위한 추가 예산 4000만~7000만유로 지원을 중앙정부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험을 설계한 KELA의 올리 캉가스는 국영방송 YLE 인터뷰에서 “실험 결과를 도출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라면서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얻으려면 더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BBC 인터뷰에서는 “정부의 열정이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핀란드는 25세부터 58세까지 실업수당 수급자 중 무작위로 추첨한 2000명에게 지난해 1월부터 2년 동안 월 560유로(약 74만원)를 지급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대상자들은 기본소득을 받기 위해 별도의 증빙서류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일자리를 얻은 이후에도 기본소득은 그대로 지급됐다.


앞서 인도,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에서도 기본소득 실험이 있었지만 시민단체나 지방정부 차원에서 진행됐다. 중앙정부 차원의 실험은 핀란드가 처음이다.


각국 진보 정치인들은 물론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등 세계적 기업가들까지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할 획기적인 실험으로 칭찬했다.


핀란드가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할 당시 실업률은 9.2%로 스웨덴·덴마크 등 인근 북유럽 국가들보다 높았다. 정부는 구직의욕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실험했다. 조건 없는 기본소득 지급으로 구직자들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주고 불안감을 덜어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빠르게 변화하고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대응하다 보니 복잡해져버린 사회보장제도를 단순화할 기회로 여기기도 했다. 행정비용을 줄일 것으로 예상돼 보수 진영에서도 환영받았다.


하지만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 실험이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페테리 오르포 재무장관은 지난달 “영국의 ‘유니버설 크레디트’ 등 대안적인 복지제도를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유니버설 크레디트는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더 유리하게 작동하는 복지’를 내세우며 각종 복지수당을 합치고 가구당 상한액을 설정해 지급한다. 핀란드 의회는 지난해 말 3개월 동안 최소 18시간 직업훈련을 받거나 일하는 조건을 충족할 때 실업수당을 받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핀란드 정부의 실험은 엄밀히 기본소득 정의에 부합하지 않아 기본소득 실험이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본소득 대상자를 실업수당 수혜자로 한정한 것부터가 취업·소득에 상관없이 최저 소득을 보장한다는 기본소득 개념과 어긋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국민들의 전체적 복지 수준을 향상시키고 빈곤·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비판했다. 실험 규모도 너무 작아 제대로 된 영향을 측정할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기본소득 관련 각종 부정적 결과와 핀란드의 실험 중단으로 세계 각국의 기본소득 실험은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핀란드가 기본소득제도를 전 국민에게 적용하는 데엔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든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또 기본소득을 확대하면 오히려 빈곤율이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스위스의 기본소득 도입은 2016년 국민투표로 부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