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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가 Bob Marley, Johnny Cash, Sam Cooke 등 음악계 거물들의 생애를 뒤흔든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다큐멘터리를 곧 내놓는다. ReMastered 라는 이름의 이 다큐멘터리 시즌은 10월 12일 시작되는데, Bob Marley가 첫 주인공으로 제목은 "Who Shot the Sheriff"다.


Eric Clapton이 리메이크해 더욱 유명해진 Marley의 곡 'I Shot the Sheriff'에서 착안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까지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Marley 암살 시도, 흑인 구세주를 따르며 영적인 표현을 중시했던 루츠레게운동에 대한 자메이카 정치권의 폭력적인 탄압에 이르기까지. 이 다큐멘터리는 Marley에 총구를 겨눈 시대를 응시한다.




Marley는 레게의 세계대사로 불렸다. 활동기간 동안 2000만장 넘게 음반을 팔았다. Clapton뿐만 아니라 Paul Simon, Clash, Eagles, Police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앞다퉈 레게의 독특한 리듬을 자신들의 음악에 이식했다. Marley는 영미, 유럽이 아닌 제3세계 국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생전 Marley와 레게는 동의어였고 지금도 그렇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런 Marley가 당시 극심한 대립과 분열로 점철된 자메이카 정치 현실을 고발하고 한 정당에 충성을 고백했으니 어쩌면 위태로운 삶을 사는 것이 당연했다. Marley의 밴드 The Wailers의 1975년작 [Natty Dread]는 좌파 사민주의 정당 인민국가당(PNP)과 중도 보수 성향의 자메이카노동당(JLP)이 서로 맞서며 계속되는 일촉즉발의 긴장상황을 그렸다. 수록곡 'Rebel Music'에서 Marley는 1972년 총선을 앞두고 군인들이 도로에 친 바리케이드에 막혔던 경험을 노래했다. 다른 곡 'Revolution'은 PNP를 향한 Marley의 공개 지지 선언으로 해석되곤 한다.



Marley와 The Wailers는 1976년 12월3일 킹스턴에서 공연을 이틀 앞두고 연습 도중 괴한의 총격을 당했다. 총알은 Marley의 가슴과 팔을 뚫고 지나갔다. 부상이 심각하지 않아 목숨을 건졌다. 아내 Rita와 매니저 Don Taylor도 총상을 입었지만 살아남았다. 총격의 동기나 배후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Marley의 PNP 지지에 위협을 느낀 JLP 진영에서 암살을 시도했을 것이란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Marley는 예정대로 공연을 강행했으나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영국으로 떠났다.

Marley는 사실상 영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떠나서도 음악작업을 계속했다. 그 결과물이 1977년 발표된 명반 [Exodus]다. 동명의 타이틀곡은 성경 속 인물 모세, 이스라엘 사람들의 망명 이야기에 빗대 자신의 상황을 노래한다. 앨범은 전체적으로 자신의 뿌리인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진솔한 자기 고백에 반응한 것일까. 'Exodus'는 물론 'Waiting in Vain', 'Jamming' 등 수록곡들은 고루 사랑받았고 앨범은 영국 차트에서 1년 넘게 자리를 지켰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이야기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 다루는 부분이 아닐지도 모른다. Marley는 결국 1978년 고향 자메이카로 돌아와 역사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는 "원 러브 피스" 콘서트 무대에서 당시 PNP 소속 마이클 맨리 총리와 야당 JLP 대표 에드워드 시가가 악수하게 했다.


Marley는 같은 해 케냐와 에티오피아도 방문했는데, 이는 흑인 구세주를 따르는 뿌리 찾기 운동 라스타파리아니즘 성지 방문으로 여겨졌다. Marley는 이듬해 대통합과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압제의 종말을 촉구하는 앨범 [Survival]을 내놓았다.


1980년에는 앞서 1967년 로디지아가 영국에서 독립해 짐바브웨로 재탄생한 것을 기념하는 공식행사에 참석해 연주하기도 했다. 그해 나온 앨범 [Uprising]에서 Marley의 시적인 노랫말 쓰기 능력은 정점에 달했다고 평가 받는다. 수록곡 'Redemption Song'에서 Marley는 이렇게 말했다. "정신적인 노예상태로부터 너 자신을 해방시켜라. 오직 우리 자신만이 우리의 마음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Marley가 1981년 5월11일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벌써 2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이유는 부조리하고 억압적인 사회 질서에 용기 있게 맞섰기 때문일 것이다.


50대 영국군 백인 장교 아버지와 10대 자메이카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난 Marley는 유년시절부터 사회의 냉담한 시선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아버지는 영국으로 떠났고 어머니는 졸지에 미혼모가 됐다. Marley는 평생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는 Marley에게 필생의 음악적 텍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자신의 흑인으로서 뿌리를 잊지 않는 라스타파리아니즘을 정신적 지지대 삼아 그는 온갖 불평등과 억압에 문제를 제기했고 제대로 된 사회제도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신음하던 아프리카 흑인들은 Marley와 함께 할 때 외롭지 않았다.


Posted by 박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