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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 시리아 철군 선언 보름…‘공포의 트라이앵글’ 된 쿠르드 지역 만비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난달 20일(현지시간) 갑작스러운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계획 발표로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역 만비즈가 혼란에 휩싸였다. 자국 쿠르드족 분리주의 세력과의 연계를 우려하는 터키가 이를 빌미로 언제든 만비즈를 공격할 태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슬람국가(IS) 격퇴전 선봉에 섰던 쿠르드족이 미국에 배신감을 토로하는 가운데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2년 전 시리아 정부군의 반군지역 탈환으로 알레포를 떠나 만비즈에 들어왔다는 이스마일 샤란은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난 며칠간 공포에 떨었는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누가 이 도시에 들어올지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만비즈는 터키 국경에서 30㎞ 떨어진 지점으로 미국·러시아·터키 등 열강이 각자 지원하는 세력이 만나는 곳에 있다. 만비즈는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점령세력이 3번이나 바뀌었다. 2012년 터키가 지원하는 수니파 반군이 장악했고, 2014년에는 IS 손에 넘어갔다. 하지만 2016년 IS가 미국이 지원하는 쿠르드족 민병대 인민수비대(YPG)에 패퇴하면서 쿠르드족 자치지역으로 편입됐다.

한 쿠르드 군부 지도자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매체 더내셔널과의 인터뷰에서 “터키가 침공하면 주민 절반이 피란을 가고, 시리아 정부군이 침입하면 주민 4분의 1이 피란을 간다는 것 정도만 차이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여성은 “우리는 터키가 지원했던 세력들이 점령했을 때를 잘 안다”면서 “그들은 절도를 일삼고 원하는 여성은 아무나 취했다. 혼란 그 자체였다”고 설명했다. 29세 청년 후세인은 시리아 정부군에 징병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터키는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 발표 이후 3일 만인 지난달 23일 만비즈 인근에 특수부대원을 배치하며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미군 철수 이후 권력공백으로 인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쿠르드족은 명백한 군사적 위협행위라고 반발했다. 터키는 만비즈에서 YPG의 즉각 철군과 유프라테스강 동안으로 퇴각을 거듭 압박하고 있다. 

시리아 정부군은 최근 아프린에서 만비즈로 가는 길목인 알아리마에 병력을 집중 배치했다. 지난달 28일에는 터키군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달라는 YPG의 요청으로 만비즈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는 시리아 북부에서 시리아 정부군의 병력 증강을 지원하기 위해 알아리마에 시리아·러시아 조정센터를 다시 설립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트럼프는 2일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우리(미군)는 영리하게 떠나고 있다”면서 “나는 절대 당장 내일 철군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철군 일정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쿠르드족이 이란에 석유를 파는 것은 기쁘지 않지만 그래도 쿠르드족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지원 방법은 설명하지 않은 채 조건부 보호를 시사하는 발언으로 쿠르드족의 불만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쿠르드족 지도부는 노골적으로 미국에 배신감을 토로하며 파열음을 내고 있다. 시리아 북부 쿠르드 자치지역 정당 연합체인 민주사회운동 대표 알다르 할릴은 디펜스포스트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우리는 많은 적을 얻었지만 트럼프는 결국 모든 것을 망쳐놨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쿠르드족이 미국과 합의 없이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에 군사 지원을 요청한 것 자체가 미 정부 관료들에게는 이미 충격이라고 백악관 분위기를 설명했다. 쿠르드족은 러시아군의 만비즈 직접 주둔도 요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러시아는 쿠르드 자치지역 영토 통제권 등에 대해 시리아 정부 지지 입장을 분명히 해 손잡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쿠르드족이 당분간 터키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결국 시리아 정부와 협력을 도모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시리아 국방부는 이날 YPG 대원 약 400명이 만비즈에서 철군했다고 발표했다. YPG 철군이 시리아 북부지역에 일상적인 삶을 돌려주자는 합의와 일치한다면서 민병대 깃발을 단 차량 수십대가 이동하는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쿠르드족은 러시아 정부 주선 아래 지난해 여름부터 시리아 정부와 자치권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해줄 것이냐를 두고 협상을 벌여오고 있다. 양측의 협상 속도에 따라 터키의 군사적 대응 강도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