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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유럽연합]‘난민·유로존·러시아 제재’ 한배 탔지만 목적지 제각각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들은 5일(현지시간) 룩셈부르크에서 만나 난민수용정책에 대해 논의했지만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회의에서 동·서유럽 국가들 간 입장차가 얼마나 큰지만 확인됐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EU 순회의장국인 불가리아는 유럽 외부에서 들어오는 난민들의 주요 기착지인 이탈리아·그리스 등 국가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소용없었다.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유입 난민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독일 등은 여전히 짊어져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헝가리·체코·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은 이탈리아·그리스 등에 발이 묶인 난민들을 절대 수용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EU는 오는 28일부터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최종 결론을 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난민에 포용적이었던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서유럽 국가들에까지 반난민 정서가 확대되고 있어 합의안 도출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반이민정책 강화 프랑스 경찰들이 지난 4일(현지시간) 파리 북부 생마르텡 운하 주변에서 거주하는 난민들을 철수시키고 있다. 파리 | AFP연합뉴스

EU 내부의 균열은 난민정책뿐만 아니라 재정정책, 러시아 제재 등 정치·경제 전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다자주의 질서 파괴, 압박 전술에 맞서 공동 대응전선을 형성해야 할 EU가 내부에서부터 흔들리면서 통합의 리더십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이날 상원에서 열린 오성운동·동맹당 연정 신임안 표결을 앞두고 한 첫 공식 연설에서 “최근 몇 년간 (EU의 압박으로) 이뤄졌던 긴축 정책이 아닌 성장을 통해 공공 부채 감축을 꾀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3%를 넘겨서는 안된다는 EU 규정을 어길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콘테 총리는 “유로존을 통치 재정 준칙은 시민들을 돕는 데 목표를 둬야 하며 이탈리아는 EU의 통치 방식에 대한 변화를 협의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유로존 탈퇴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포퓰리즘 정부 들어선 이탈리아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5일(현지시간) 상원에서 연정 내각에 대한 신임안 표결을 앞두고 연설하고 있다. 로마 | 신화연합뉴스


오성운동과 동맹당 모두 유로존을 탈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향후 국내 여론을 구실로 탈퇴할 수 있다는 의구심은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 오성운동·동맹당 공히 법인·소득 세율 인하, 연금수령자 확대 등 재정적자를 대폭 늘리는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고 있어 불안을 키운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경제성장률이 조금씩 상승 흐름을 타 그리스처럼 구제금융을 신청할 가능성은 아직까지는 낮다. EU는 이탈리아가 행여 유로존을 탈퇴할 경우 다른 국가들의 줄줄이 탈퇴를 우려한다. 긴축재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리스, 스페인까지 탈퇴한다면 유로존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회원국들을 유로 단일통화로 묶고 재정적자에 상한선을 두는 EU 정책에 대한 반감은 상당하다. 2011년 구제금융 이후 허리띠를 졸라맸던 그리스는 오는 8월 구제금융 체제를 졸업한다. 하지만 정부가 이후에도 연금 추가 삭감 등 긴축정책 조치를 이어가기로 하자 노동계는 지난달 31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러시아 제재에 있어서 EU 회원국들 간 엇박자 행보도 보인다. 콘테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지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오성운동·동맹당은 지난 3월 총선 유세 때부터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영국에서 러시아 출신 이중스파이 독살 시도 사건이 벌어졌을 때 대부분 서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정부를 배후로 보고 자국 러시아 대사를 추방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동참하지 않았다. 지난 1월 대통령 연임에 성공한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친러 행보를 보였다.



오스트리아 ‘친러’ 행보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오른쪽)가 5일(현지시간) 빈에서 열린 비즈니스 행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이야기하고 있다. 빈 | 타스연합뉴스


반이민 정서를 등에 업고 집권한 헝가리·폴란드는 EU 흔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난민수용정책부터 사법부 독립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EU와 부딪친다. 양국 정부는 경제력·인구규모에 따른 난민 분담수용을 거부한다. 판사 임명 권한을 의회와 정부에 대폭 이양하도록 했다. 특히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사를 문 닫게 하거나 사들여 언론 자유를 탄압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폴란드는 미국의 이란 제재 동참, 러시아~서유럽 국가들 간 가스관 직통 연결 프로젝트인 ‘노르드스트림2’ 등에서도 독일·프랑스와 맞서고 있다. 노르드스트림2는 우크라이나를 거치는 게 아니라 발트해를 거쳐 서유럽 국가로 가스관이 직접 연결되도록 한다. 동유럽 내 대표적인 친미 국가인 폴란드는 노르드스트림2가 러시아의 영향력만 키우고 EU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며 반대한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도 폴란드와 같은 입장이다.



이탈리아가 반EU로 돌아선 상황에서 영향력을 대체할 나라로는 스페인이 꼽힌다. 하지만 극심한 정정불안이 아킬레스건이다. 최근 우파 국민당이 지도부의 부패스캔들로 실각한 이후 집권한 사회당이 집권을 위해 이해관계가 다른 정당들을 끌어안으면서 안정적인 리더십을 보여주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극좌 포퓰리즘 정당 포데모스와 우파 신생 정당 시우다다노스, 카탈루냐 분리주의 정파 등 극과 극 정당이 한데 모여 있다. 스페인 정부가 일관된 노선을 가지고 EU 정책에 발맞추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