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의회가 압둘팟타흐 알시시 대통령의 집권 기간을 8년까지 연장할 수 있는 개헌안을 16일(현지시간) 통과시켰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집트 의회는 현재 임기 4년에 재선까지만 허용하는 대통령직을 임기 6년에 3선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개헌안을 찬성 531표 대 반대 22표로 통과시켰다.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시시 대통령의 임기는 2022년까지인데 개헌안이 국민투표를 통해 최종 확정되면 2024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하게 되고, 이후 대선에서 또 당선될 경우 최고 2030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시시 대통령은 이집트 역사상 최초로 선거로 당선된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2013년 군부 쿠데타로 물러나게 한 뒤 정권을 잡은 인물이다. 이후 국제사회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정부 인사를 납치·고문하고, 언론사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며 권력을 공고히 했다. ‘아랍의 봄’ 당시 군부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끌어내렸던 이집트의 민주주의가 오히려 후퇴하는 모양새다.
최근 북아프리카 인접국으로 이집트처럼 군부가 장기 집권했던 수단·알제리를 중심으로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시시 대통령 진영이 절대다수인 의회가 영향력 차단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여권 블록 소속 정당인 ‘이집트 애국운동’ 소속 무함마드 아부 하마드 의원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시시 대통령은 정치·경제·안보 분야에서 중요한 조치들을 취해왔다”며 “이웃 나라 수단·리비아가 정치적으로 불안한데 시시 대통령이 개혁을 완수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개헌안에는 군부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도 담겼다. 헌법 200조를 바꿔 군의 역할을 국가 안보 보존에서 국민 개인의 이익과 권리 수호까지 넓힌다는 계획이다. 이집트 군은 이미 사회기반 시설 건설 프로젝트 추진 임무를 맡으며 경제성장의 중추 역할을 해왔다. 군의 경제활동 참여 분야는 확대될 전망이다. 또 헌법 234조를 수정해 무바라크 전 대통령 축출 이후 과도정부 역할을 했던 군최고평의회(SCAF)의 국방장관 임명권도 계속 유지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개헌안 발의 전까지만 해도 SCAF의 국방장관 임명권은 시시 대통령 두 번째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될 예정이었다.
대통령과 군부의 사법부 장악력은 높아지는 반면 의회 영향력은 축소됐다. 헌법 185·189·193조 수정으로 대통령이 직접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주요 검찰청 수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했다. 국제 앰네스티는 “이로써 이집트 사법부의 독립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간인의 군재판소 회부 요건 사유은 기존의 군시설 공격행위에서 군이 보호하는 시설에 대한 공격으로 넓혀 군재판소의 권한은 강화됐다. 개헌안에는 2014년 폐지된 상원을 복구하고 대통령이 전체 180석의 3분의 1을 지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국민 직접 선출직인 하원 의석수는 전체 596석에서 450석으로 25% 이상 축소하기로 했다.
개헌안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는 의회 통과 후 30일 이내로 실시해야 한다. BBC는 시시 정권이 반대 여론이 결집되는 것을 막기 위해 관련 웹사이트 약 3만4000개의 접속을 부분 혹은 전체 차단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