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병합한 지 4주년인 지난달 18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4선에 성공했다. 푸틴은 선거 기간 내내 어떤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는 ‘강한 러시아’를 앞세웠고, 압도적인 지지율(76.7%)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최근 푸틴 대통령을 둘러싼 대외 상황은 여의치 않다. ‘강한 러시아’ 구호를 외치기에는 대외적 갈등만 확산시킬 처지에 놓였다. 러시아 출신 이중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 독살 시도 의혹으로 사건 발생국인 영국을 비롯해 유럽 각국이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하면서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 대 서방의 ‘신냉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실제 독일·프랑스 등 유럽 25개국은 총 57명의 자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도 벨기에 브뤼셀 본부에서 러시아 외교관 7명을 추방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단일 국가로는 가장 많은 60명의 외교관을 추방했다.
러시아 푸틴 정부는 앞서 각국 선거에 개입하고 기밀정보를 빼가는 등 공작을 일삼았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독일 정부는 지난 2월 러시아 해커조직이 국방부·외교부 내부 통신망에 침투해 정보를 빼간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스페인 정부는 지난해 카탈루냐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앞두고 러시아가 소셜미디어 가짜 계정을 이용해 독립 여론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위해 개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러시아와 서방 갈등은 이미 2014년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가시화했다. 러시아는 서방 국가들이 주도한 경제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최근 고조되고 있는 러시아 제재 분위기를 어떻게 돌파해나갈지 주목된다.
푸틴 정부는 자국 외교관을 추방한 나라들의 러시아 주재 외교관들을 똑같은 수만큼 추방하는 등 맞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계속 이런 식의 대응을 하기는 어렵다. 영국이 다른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을 설득해 러시아에 대한 추가 공동 경제 제재에 나설 경우 더욱 버티기 힘들어진다.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은 2015년부터 마이너스로 떨어졌다가 지난해에야 1.5%로 회복했다. 하지만 석유, 천연가스 등 자원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로는 앞으로도 연 2%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러시아가 제재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구 국가들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해 옛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고 유럽 서진의 전초기지로 활용하려 한다는 의혹을 보낸다.
러시아 입장에서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한다면 우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 지원부터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푸틴이 러시아의 ‘핵심 이익’이라고 지칭하는 이 지역을 순순히 내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푸틴 정부는 제재 분위기를 진정시키고 다른 국가들과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시리아·한반도 등 분쟁지역에서 러시아 역할론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시리아 내전사태 해결을 위한 중재자로서 역할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는 충고가 잇따른다. 푸틴 정부가 지원하는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은 최근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의 마지막 반군거점지역인 동(東)구타 탈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푸틴이 버티는 한 이들리브 등 반군지역을 대상으로 한 시리아 정부군의 봉쇄와 공습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가 아사드 정권 승리라는 목표만 달성하고 시리아에서 완전 철수할 경우 이슬람국가(IS) 등 테러세력이 부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시리아 주민들의 비참한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은 러시아와의 협상을 마냥 외면하기는 힘들다.
러시아가 중국과의 경제협력 강화를 돌파구로 삼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중국은 서방의 러시아 경제 제재 시기에도 푸틴 정부와 에너지, 인프라 구축, 항공우주산업 등에서 협력해왔다. 지난해부터 한목소리로 트럼프 정부를 비판하며 ‘다극체제’ 재편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은 중앙아시아, 유럽 남동부 국가들에 대규모 투자를 하며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대체해나가는 중이다. 러시아가 지하자원 보고로 여기는 북극에까지 투자를 가속화하면서 중·러 경쟁구도가 펼쳐질 수도 있다.
푸틴 정부가 당장 국민들에게 수치로 경제성과를 증명해 보일 수 있는 부분은 자원 수출이 꼽힌다. 유럽 각국은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주요 수입국이다. 결국은 푸틴이 서방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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