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 해외판에는 에마뉘엘 마크롱이 프랑스 대통령이 되기까지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비하인드 더 라이즈>가 올라왔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총선 1차 투표에서 그가 이끄는 정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는 압승을 거뒀다. 18일 결선투표에서 앙마르슈와 민주운동당(MoDem)의 집권당 연합이 하원 전체 577석 중 400~455석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마크롱 현상’을 받쳐줄 ‘실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 15% 지지로 의회 완전 장악?
1차 투표에서 집권당 연합은 32.32%를 득표했다. 투표율은 49%였으니 전체 유권자 중 약 15%만이 지지한 것이다. 그런데도 400석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선거제도에 근본적인 허점이 있다는 얘기다.
투표율은 60년 만에 최저치였다. 정치컨설턴트 제롬 생트-마리는 AFP통신에 “기권이 많았다는 것은 정치와 선거제도에 대한 불만, 특히 노동자들의 민심이 떠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특히 젊은층과 노동자 계층의 기권이 많았다.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과들루프는 기권율이 76%였고, 빈곤층이 밀집된 파리 북부 외곽과 산업화가 덜 된 북동부 지역에서 기권율이 높았다. 미국 뉴욕타임스 등은 집권당 연합이 의석의 70~80%를 장악하면 사실상 의회를 통한 대통령 견제가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한다. 정치 아마추어에 불과한 마크롱이 절대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인터넷매체 더로칼은 “마크롱의 반대자들은 의회가 아니라 길거리에 있다”며 19일 전역에서 노조와 NGO들의 반대집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는 마크롱 정부의 ‘색깔’과도 관련이 있다. 마크롱은 경제개혁을 외치지만 실상은 친기업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를 줄이고, 기업들이 해고하기 쉽게 하고, 법인세를 낮추는 식의 경제개혁 계획은 세계의 우파 정부들이 추진해온 것이다.
마크롱은 지난달 23일부터 주요 노조, 산별단체 등과 회담을 시작했다. 산별 단체협약이 아니라 노동자와 개별 기업이 임금협상을 하게 하는 내용 등을 논의했다. 주 35시간 노동제는 유지한다고 했지만 근무시간과 수당을 사측과 협의할 수 있게 해, 사측에 좀 더 유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초과근무 수당은 현금 대신 사회보장연금 공제 같은 형태로 지급될 수도 있다.
■ ‘반트럼프’ 이미지 정치
지난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하자, 마크롱은 트럼프의 대선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패러디해 “지구를 다시 위대하게”라고 연설했다. 하지만 마크롱은 대선 기간 한번도 환경 문제를 언급한 적이 없다. 취임 후 환경을 심각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 북서부 대서양 연안 라니옹만의 모래·골재 채취를 허용했고, 코트다르모르 지방에서 호주 업체의 광물탐사를 허용했다.
마크롱과 앙마르슈에 ‘샤를 드골 이래 최대의 승리’를 안긴 유권자들의 선택에는 기성 정치에 대한 실망감과 반발이 반영돼 있지만 시민들이 갈구한 변화를 가져올 이상과 정책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대외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와 맞붙으며 ‘글로벌 지도자’로 부각됐지만 ‘반트럼프’ 이미지로 반사이익을 얻은 것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CNN은 “유럽은 39세의 강한 남자를 필요로 한다”는 기사를 통해 그가 세계 강대국 지도자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이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마크롱 정부의 대미·대러 정책이나 브렉시트 협상 정책의 방향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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