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포스트는 14일(현지시간) 발생한 영국 런던 그렌펠타워 화재사고를 두고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일어났을 법한 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고도로 개발된 첨단 금융도시 런던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고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는 얘기다. 당국의 화재 예방조치는 미흡했고, 사고 수습도 부실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테레사 메이 총리는 사고 이튿날에야 현장을 방문했지만 주민들을 만나지도 않고 돌아갔다.
이번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15일 오전까지 17명으로 늘어났다. 대니 코튼 런던소방대장은 “내부에 시신들이 더 있지만 숫자는 알 수 없다”며 “생존자를 찾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당국은 수색구조팀과 수색견을 들여보내 본격적인 시신 수습에 들어갔다. 간신히 빠져나온 입주자들 중 74명이 다쳐 병원에 실려갔고, 이 중 17명이 중태다.
메이 총리는 이날 오전 10시쯤 그렌펠타워 현장을 찾았다. 사고가 난 지 33시간 만이다. 그는 전날 성명을 내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애도하고 적절한 조사를 약속했지만 불난 지 12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내각회의를 소집해 비난을 들었다. 이튿날에야 현장을 방문해 소방관들에게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으나 집을 잃고 이재민이 돼 주변 호텔과 체육관 등에 머물고 있는 주민들은 만나지 않고 돌아갔다. 설레스트 토머스라는 여성은 트위터에 “메이의 차가 내 집 밖에 20분 정도 주차돼 있었다. (메이가 방문한) 통제구역 안에 주민들은 한 명도 없었다”는 글을 올렸다.
급히 수습에 나서야 할 당국이 우왕좌왕하자 노동당은 대정부질문을 위한 특별 의회 소집을 요구했다. 불이 났을 때 주민들을 대피시킨 사람들은 당국이 아니라 라마단 기간을 맞아 늦게까지 깨어 있던 무슬림 이웃들이었다. 이슬람 구호단체에서 주민들을 도와주러 나온 지아 살리크는 가디언에 “자선단체들은 왓츠앱 같은 메신저로 소통하면서 지원조직을 엮어 나가고 있는데 이를 조정하는 당국의 노력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당국의 화재 대책이 미흡했다는 얘기도 계속 나온다. 피해자들은 아파트에 스프링클러는 물론 화재경보 시스템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아파트 보수공사 부실시공 논란이 일자 노동당 데이비드 라미 의원은 이번 참사를 ‘기업 살인’이라고 비난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을 정부의 공공주택 정책 실패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영국은 그렌펠타워 같은 공공임대주택을 ‘사회주택’이라는 이름으로 과거 대규모로 공급했으나, 관리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상당 부분을 민간에 팔았다. 그렌펠타워처럼 관리기구를 만들어 넘긴 단지들도 있다. 민영화와 함께 집값은 치솟았고, 열악한 주거환경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옛 사회주택들은 방치됐다.
빈부격차는 이민자 문제와도 겹쳤다. 이번 화재가 난 곳은 소말리아,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계 이주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다. 그렌펠타워에서 대피한 입주자들 상당수도 이주자들이다. 저소득층과 이주자들이 몰려 있는 노후한 공공주택단지를 방치해둔 것이 결국 재난을 가져왔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주민은 일간 텔레그래프에 “당국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서 “끔찍한 일이 일어났으니 이제라도 주민들 말에 귀를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2011년 소방관료협회 등의 조사에서 이미 공공주택 4채 중 3채가 화재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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