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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총선 앞둔 이탈리아 정당들 ‘나몰라 재정난, 묻지마 감세’



다음달 4일(현지시간) 총선을 앞두고 이탈리아의 주요 정당들이 경쟁적으로 포퓰리즘적 공약을 내놓고 있다. 구체적 재원 마련 대책 없이 세금은 줄이고 복지는 늘리는 식이어서 낮은 성장률, 30%가 넘는 높은 청년 실업률 등 구조적 문제 해결과는 어긋난다는 지적과 우려가 나온다.



중도좌파 성향의 집권 민주당 소속 파올로 젠틸로니 총리는 지난 16일 “이탈리아에 포퓰리스트, 반유럽연합(EU) 성향의 정부가 들어설 위험성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포퓰리스트 정부 등장에 대한 우려는 가시지 않는다.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이 신년연설을 통해 정당들에 ‘현실적·구체적 공약’을 당부하자, 극우 동맹당 마테오 살비니 대표는 재원 마련 대책의 일환이라며 1958년 공식 폐쇄된 성매매업소를 부활시키고 세금을 매기자는 공약을 내놨다.


이탈리아의 국가부채, 재정적자는 심각하다. 이탈리아는 유럽 국가들 중 4번째로 경제규모가 크지만, 국가부채가 2조3000억유로(약 3044조4000억원)에 이른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32%로 EU 회원국 중 그리스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3월 총선으로 새로 구성될 정부가 국내 경제 활성화와 복지 향상을 이유로 재정적자를 대폭 늘리는 정책을 펼칠 경우 EU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자칫 독립적인 재정정책을 펼치겠다며 유로존 탈퇴를 선언할 경우 다른 국가들의 연쇄 탈퇴 우려로 브렉시트 못지않은 혼란이 초래될 수도 있다.


탈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우파연합은 기업과 개인에게 일괄적으로 낮은 단일세율 적용을 핵심공약으로 제시했다. 베를루스코니가 소속된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는 23% 세율을 제시했다. 연합의 한 축인 동맹당은 15%로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양당 모두 최저소득계층에게는 일절 세금을 걷지 않기로 합의했다.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상속세는 물론 자동차세까지 폐지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전진이탈리아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더 싼값에 사료를 살 수 있도록 부가가치세를 폐지하겠다는 이색공약도 내걸었다. 우파연합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37% 내외 지지율로 2위인 오성운동에 10%포인트 가까이 앞서 있다.


전임 마테오 렌치 민주당 정부에서 연금수령 연령을 2019년까지 67세로 높이기로 한 것에는 반대한다. 동맹당은 이를 즉각 폐지해 빠른 은퇴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진이탈리아는 월 최저연금으로 현재보다 2배 높은 1000유로를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연금수령 연령을 다시 낮출 경우 연 1400억유로가 들 것으로 추산된다. EU는 연간 재정적자를 GDP 대비 3% 이하로 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동맹당은 막대한 예산이 드는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EU 재정권고안도 무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부패한 기성정치 타도를 외치는 오성운동은 이탈리아 국적자라면 모두 월 780유로씩 주는 기본소득 정책을 핵심 공약으로 밀고 있다. 소득이 늘어야 소비가 늘어 경제가 그만큼 성장한다는 논리다. 현행 연금제도에 반대하며 월 최저연금 수령액을 780유로까지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또 연소득 1만유로 미만은 세금을 면제하고 소득구간별 징수비율도 낮춘다는 계획이다. 기업들이 납부하는 지방세도 대폭 줄이겠다고 했다.


불필요한 재정지출을 줄이고 에너지기업, 은행, 보험사 등에 세금을 높여 재원을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오성운동은 기본소득 추진에 연 170억유로가 들 것으로 추산하지만 전문가들은 290억유로가 필요한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