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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트럼프도 못 말리는 ‘발목잡기 선수’ 공화당 극보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핵심공약이었던 오바마케어 대체법안 ‘트럼프케어’가 지난 26일(현지시간) 하원 표결에 부쳐지지도 못하고 무산됐다. 현재 미국 의회는 상·하원 모두 트럼프의 소속 정당인 공화당이 다수다. 그럼에도 트럼프케어를 통과시키는 데 실패했다. 당내 강경 보수파인 프리덤코커스의 반대가 거셌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날 트위터에 “민주당원들은 워싱턴에서 오바마케어가 프리덤코커스 덕분에 살아난 걸 보며 웃고 있다”고 썼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의 네오콘에서 시작해 버락 오바마 정부 때 번번이 주요 정책에 제동을 건 티파티를 거쳐, 이제는 프리덤코커스가 뉴스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민주당에 맞서는 것은 물론, 공화당 주류 ‘정통보수파’와도 싸우는 이런 극보수 강경파 그룹들이 유권자 다수의 뜻과는 상관없이 미국 정치를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 복지 줄이자는 프리덤코커스

프리덤코커스는 연방하원 내 강경 보수파 조직이다. 2015년 1월 짐 조던 오하이오주 하원의원과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하원의원이던 믹 멀베이니(현 백악관 예산관리국장)가 주도해 만들었다. 하원 전체 435명 의원 중 30명에 불과하지만 공화당 주류와 또 다른 정책 노선을 앞세우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이들이 트럼프케어를 무산시킨 이유는 민주당의 반대 이유와 전혀 달랐다. 민주당은 오바마케어를 없애서는 안된다는 이유에서 법안에 반대했으나, 프리덤코커스는 오바마케어 폐기가 완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트럼프에 맞섰다. 

프리덤코커스 소속 의원 대부분은 백인 주민이 많은 중서부 지역구 출신이다. 트럼프의 지지기반과 많이 겹친다. 

오바마케어에 대한 입장에서 보듯이 사회복지비 삭감을 주장하며 감세와 작은 정부를 지지한다. 이민자가 늘어나는 것에 반대한다. 당내 주류와 달리 보호무역주의 노선을 지지하는 것도 트럼프와 비슷하다. 하지만 트럼프가 취임 뒤 월가의 자본가 편으로 기울고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일부 수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반대로 돌아섰다. 조던은 지난 2월 트럼프 정부가 사실상 잠정휴업 상태인 수출입은행을 되살리려 한다면 앞으로 정부 정책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대부분 보수진영에서는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수출입은행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보호한다고 보지만 프리덤코커스는 기업의 배만 불려준다고 비난한다.


■ 연방정부 문 닫게 한 티파티

오바마 정부 때는 감세와 작은 정부, 시장자유주의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티파티 그룹이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티파티는 1773년 영국의 지나친 세금 징수에 반발해 일어난 ‘보스턴 차 사건’을 시민 저항운동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이 그 정신을 계승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자유를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하며 정부 개입은 범죄처럼 생각한다. 오바마의 총기규제와 미등록 이주자 구제, 오바마케어 도입에 번번이 반대했다. 
보수 우익 자산가인 찰스·데이비드 코크 형제가 티파티의 실질적인 돈줄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대선 때 공화당 경선후보로 나선 테드 크루즈, 벤 카슨 등이 티파티로 분류된다. 랜드 폴 상원의원과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도 이 그룹에 속한다. 이들이 여론의 지탄을 받은 것은 오바마케어에 반대하며 예산안을 부결시켜, 연방정부가 일시 폐쇄되는 ‘셧다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2013년 10월 셧다운으로 연방공무원 200만명 중 80만명 이상이 무급휴가에 들어갔다. 국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고 공화당은 15일 만에 백기투항했다.

티파티를 지지하는 유권자는 독실한 기독교도에 교육수준이 낮은 백인들이 많다. 공화당 지지자들 중 티파티 지지자의 비중은 낮지만 당내에서 티파티의 목소리는 이례적으로 커졌고, 결국 공화당 주류가 힘을 잃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해 대선 때 공화당이 속수무책으로 ‘아웃사이더’ 트럼프에게 넘어간 것은 티파티의 무리수 탓이 컸다는 지적이 많았다.



■ 대테러전 주도한 네오콘

미국 공화당의 ‘물을 흐린’ 원조 강경보수는 2000년대 미국과 세계를 테러와의 전쟁 속으로 몰고간 네오콘이다. 
베트남전에 찬성한 민주당 내 소수 분파가 ‘전향’해 1980년대 공화당에 자리를 잡았고, 이들은 탈냉전기를 거치며 극보수 이데올로그로 변신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가 쓴 <역사의 종언>이 네오콘 등장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력을 써서라도 미국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세계에 이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부시 행정부의 이데올로그들이 돼 이라크 침공을 밀어붙이게 만들었다. 기독교 근본주의에 기반을 둔 현대판 십자군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여전히 러시아를 적으로 간주하는 네오콘은 친러 성향의 트럼프를 반대한다. 대선 때 네오콘 그룹에서는 트럼프 대신 차라리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을 찍겠다는 목소리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