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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파리 테러’ 안보 이슈 급부상…막판 초접전 판세 흔들리나

프랑스 대선을 사흘 앞둔 20일(현지시간) 수도 파리의 ‘심장’ 샹젤리제 거리가 테러로 멈춰섰다. 이날 저녁 샹젤리제 대로변에 나타난 테러범이 경찰들을 총으로 쏴 경찰 1명이 숨졌다. 테러 직후 대선후보들의 막판 유세도 일제히 중단됐다.


극우 포퓰리즘과 국수주의를 앞세운 르펜이 대권까지 잡을지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운 가운데 이번 테러가 막판 표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주목된다.


총격전은 이날 오후 9시쯤 샹젤리제 대로변 막스앤스펜서 상점 근처에서 일어났다. 범인은 경찰 순찰차량 옆에 차를 대고 총을 쏘았다. 그 자리에서 경찰 한 명이 숨졌고 다른 경찰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지나던 한 관광객도 무릎에 실탄이 스쳐 부상을 입었다. 테러범은 도주하다 경찰의 총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했다. 사건 직후 거리는 폐쇄됐다가 이튿날 오전 풀렸다. 정부는 대선에 대비해 경찰 5만명에 군경의 모든 특수부대까지 동원해 최고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긴급 회의 후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이 안전하게 치러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1일 오전에는 국가안보회의가 소집됐다. 일간 르파리지앵은 21일자 1면에 “샹젤리제가 공격당했다”는 제목을 달았다. 나폴레옹의 개선문이 거리의 정점을 이루고, 매년 프랑스혁명 기념일마다 대대적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샹젤리제는 프랑스의 ‘역사의 심장’이다.


이슬람국가(IS)는 사건 발생 직후 아마크통신에 벨기에인 조직원의 신상까지 공개하며 자신들이 벌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벨기에 당국은 “범인은 벨기에가 아닌 프랑스 국적”이라고 밝혔다. AP통신은 경찰 자료를 입수해 용의자가 39세의 카림 셔르피이며 이슬람 극단주의에 경도된 인물이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테러범의 집을 수색하고 가족을 조사 중이다.


총격전이 벌어지던 때 대선후보들은 마지막 TV토론을 하고 있었다. 테러 소식이 전해지자 토론은 바로 중단됐다.


21일 날이 밝자 대선후보 대부분은 마지막 유세 일정을 취소하고 표심을 의식하며 여론전에 나섰다. 프랑스 대선 막판 갑자기 안보 이슈가 급부상했다.


극우 민족전선(FN) 마린 르펜 후보와 선두를 다투고 있는 중도 ‘앙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은 후보 중 가장 먼저 성명을 내놨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역할은 프랑스인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나는 준비됐다”고 강조했다. 당선되면 정보당국의 테러 대응을 총괄하는 대테러 태스크포스를 꾸리겠다고도 했다. 다른 후보에 비해 안보정책이 약점으로 꼽혀 온 것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르펜은 21일 오전 라디오 RFI에 나와 “더 이상 순진해져서는 안된다”며 “내가 국가를 경영했다면 이런 테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테러 요주의 인물로 분류된 사람들을 즉각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보 이슈에서는 르펜과 궤를 같이하는 중도 우파 ‘공화주의자’들의 프랑수아 피용 후보는 성명에서 “이렇게 계속 살아갈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경찰서를 1만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베르나르 카즈뇌브 총리는 “르펜과 피용이 위기를 과장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다”며 “무엇도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중대한 순간을 어지럽힐 수 없다”고 말했다. 극좌 좌파연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프랑스 앵수미즈)’의 장 뤼크 멜랑숑은 “테러는 처벌받을 것”이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하지만 유세는 취소하지 않았다.


테러 직전 여론조사에서는 마크롱이 르펜을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엘라브가 19~20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마크롱은 지지율 24%를 얻어 르펜보다 2.5%포인트 앞섰다. 마크롱은 3일 전 조사와 비슷했지만 르펜은 1.5%포인트 떨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유권자의 3분의 1이 부동층인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테러와 안보를 이유로 국경을 닫고 난민을 막자고 주장해 온 르펜에게 더 힘이 실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그동안 테러가 발생할 때마다 르펜의 지지율이 오르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1일 오전 트위터에 “프랑스 국민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 “이번 테러가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썼다.


현지 언론 더로칼은 르펜이 이번 테러로 최근 하락세인 지지율을 끌어올리려 하겠지만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봤다. 대신 유권자들은 오랜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을 해결할 정책을 원한다고 분석했다.


AFP통신은 테러로 인한 불안심리가 피용에게는 다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수성향에 총리를 지내는 등 안정감이 있는 피용에게 르펜을 지지하는 표가 일부 쏠릴 수 있다는 것이다. 피용은 줄곧 이슬람 전체주의에 반대하자고 주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