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EU) 본부. 데이비드 데이비스 영국 브렉시트장관과 미셸 바르니에 EU 협상대표가 마주했다. 영국과 EU 간 브렉시트 협상이 공식 개시된 것이다.
이날 첫 만남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선물을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됐다. 데이비스는 바르니에에게 1950년대 프랑스 탐험대의 히말라야 등정기를 다룬 희귀 책자를 줬고, 바르니에는 프랑스 목재로 만든 등산 스틱을 건넸다. 두 사람은 소문난 등산 애호가들이다. 하지만 영국 언론들은 이 선물에 “앞으로의 협상이 산악 등반처럼 험난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달았다. 실제로 바르니에는 지난 주말 알프스를 등산하며 협상 전략을 구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웃으며 악수를 나눴지만 이어진 협상의 분위기는 심상찮았다. 첫날부터 문을 닫고 7시간 비공개 마라톤 협상을 했다. 그후 공동 기자회견에 나선 두 사람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땀에 절어 머리가 헝클어진 데이비스는 만신창이가 된 것처럼 보였지만 바르니에는 말끔했다. 가디언은 협상 전 호기롭게 굴던 데이비스가 막상 테이블에 앉은 뒤에는 “아마추어 축구팀이 FC바르셀로나를 상대한 듯이 기진맥진했다”고 전했다. 축구 경기에 빗대면 이날의 협상은 영국 팀이 “초반부터 세 골을 내줘 3대0으로 패한 꼴”이라고 표현했다.
이날 첫 만남의 분위기는 협상에 임하는 양측의 준비 태세를 그대로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영국은 준비가 돼 있지 않았고, 협상의 목표와 스케줄이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 EU 고위대표를 지낸 베테랑 협상가 바르니에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는 영국의 EU 단일시장 접근권을 둘러싼 협상에 대해 “긍정적이지도, 그렇다고 비관적이지도 않다. 단호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EU는 영국이 단일시장의 이점만 챙기는 ‘체리피킹(과실 따먹기)’를 할 수 없다고 진작부터 못박았다. 바르니에는 이 원칙대로 협상을 끌고 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시장 접근 문제에 앞서, 영국에 사는 EU 회원국 국민 300만명과 EU 내 영국민의 권리, 영국의 EU 재정 기여금 처리, 아일랜드와 영국 간 국경문제 등을 먼저 논의하자는 것이다. 당장 교역 문제가 발등의 불인 영국은 속이 탈 수밖에 없지만, 향후 협상 스케줄의 열쇠는 바르니에가 쥐고 있다는 게 첫 대면에서 분명해졌다. 바르니에는 “양측 모두에게 공정한 협상이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향후 협상 일정은 EU가 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언론들은 데이비스가 준비 없이 브뤼셀에 나가서 시작부터 끌려다녔다고 비판했다. 데이비스는 아일랜드쪽 국경 문제가 통상·세관과 연계돼 있다면서, “협상 막판까지 논의될 수 있다”고 했다. 협상 시한과 목표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브렉시트가 이뤄지면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간의 경계선이 사실상 ‘유럽의 서쪽 국경’이 된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의 인적·물적 교류도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바르니에는 “아일랜드는 뭔가 창의적인 대안을 원할 것”이라고 영국에 책임을 넘겼다. 가디언은 데이비스가 이 국경 문제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듯하다면서 “데이비스가 살짝 천치같다는 걸 몰랐다는 게 바르니에의 실수였다”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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