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종교적 업적 뿐 아니라 타인을 위해 희생한 의인도 가톨릭 성인이 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80)이 11일(현지시간) 교서를 통해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신자도 성인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고 로세르바토레로마노 등 바티칸 언론들이 전했다. 기존 시성조건은 순교, 영웅적인 삶, 성인에 걸맞는 명성 등 3가지였다. 교황의 교서에는 종교 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도 중시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로이터통신은 교황이 “수백년 가톨릭 시성역사에 가장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교황은 교서에서 타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기꺼이 순교의 피를 흘린 사람들에게 교계가 보낸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했다. 새 시성조건에 따르면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를 돌본 사람, 목숨이 위태로운 병에 걸렸어도 아이를 살리려고 치료를 중단해 숨진 임산부 등도 성자가 될 수 있다. 교황청 시성국의 마르셀로 바르톨루치 대주교도 기존 시성조건이 제한적이어서 “해석하기 쉽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그는 타인을 위한 희생이 순교와 영웅적인 삶의 요소를 모두 아우를 수 있다고 봤다.
AFP통신 등 외신들은 태아를 위해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2012년 숨진 이탈리아의 키아라 코르벨라에게 새 조건이 적용될 수 있다고 봤다. 코르벨라는 기형 판정을 받은 두 아이의 낙태를 거부하고 낳았다. 아이들은 모두 사산됐다. 세번째 임신했을 때는 피부암에 걸려 치료가 시급했지만 출산을 위해 화학요법을 받지 않았다. 코르벨라는 아들 프란체스코를 낳고 1년 만에 28세로 숨졌다. 코르벨라의 지인들은 코르벨라 5주기를 맞아 시성을 촉구하고 있다.
교황은 재위 이듬해인 2014년부터 남미 엘살바도르의 독재정권에 맞선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를 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福者)로 선포하겠다고 밝히는 등 사회적인 가치를 중시해왔다. 농민과 빈민, 원주민의 대변자였던 로메로는 1980년 3월24일 미사 도중 군부정권이 보낸 암살자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1997년부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엘살바도르 교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성을 검토했지만 바티칸 보수파의 핵심이었던 당시 신앙교리국 장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로메로의 신심을 해방신학적이고 좌파적으로 여겨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박해뿐 아니라 사목 과정에서 숨진 경우에도 순교로 인정할 것을 검토하도록 요청하며 로메로의 성인 추대 길을 열었다. 교황은 지난 2015년 2월 로메로를 순교자로 선포하고 그해 5월 복자로 선포했다.
테레사 수녀의 이례적으로 빠른 성인 추대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로 꼽힌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돌보는 데 평생을 바쳐 ‘빈자들의 성녀’로 불리는 테레사 수녀는 선종 19년 만인 지난해 9월 가톨릭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교황청은 지난 2015년 12월 다발성 뇌종양을 앓던 브라질 남성 마르실리우 안드리뉴가 2008년 테레사 수녀에게 기도한 뒤 완치된 것을 테레사 수녀의 두 번째 기적으로 인정했고, 교황은 지난해 3월 테레사 수녀의 성인 추대를 공식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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