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주의적 가치를 내세우며 유럽연합(EU) 통합을 강조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사진)의 글로벌 리더 이미지는 허상이었을까.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난민을 100만명 넘게 받아들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높이 평가하면서 프랑스도 보호가 필요한 난민을 더 많이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랬던 마크롱이 21일(현지시간) 망명신청자들을 더 빨리 내보내고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처벌은 강화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안했다.
이날 내무부가 밝힌 법안에 따르면 미등록 이민자에 대한 구금 가능 기간은 기존 45일에서 90일로 2배 늘었다. 불법 입국 시에는 최대 징역 1년에 처해진다. 가짜 신분증을 사용하다 적발되면 징역 5년까지 처해진다.
난민 지위 획득은 더욱 어려워진다. 망명신청 가능 기간은 프랑스 입국 이후 120일 동안에서 90일 동안으로 줄었다. 망명신청 이후 대기 기간은 11개월에서 6개월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프랑스 정부는 이 기간 동안 거처나 식료품을 지원한다. 대기 기간을 줄인 이유에 대해 제라르 콜롱 내무장관은 “이민자들이 가능하면 빨리 프랑스 사회에 통합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난민지원단체들은 망명신청 거부 시 이의신청 접수 기간까지 기존 30일에서 15일로 줄인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변호사를 구하기도 촉박한 시간으로 어떻게든 난민들을 빨리 내쫓으려는 조치라는 것이다.
마크롱 정부가 반이민 기조로 돌아선 것은 국내 여론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최근 여론조사기관 BVA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3% 이상이 이민자들이 너무 많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다른 여론조사기관 엘라베 설문에 따르면 정부의 이민 관련 정책이 너무 느슨하다는 응답 비율도 60%를 넘어섰다.
난민에 포용적일 것으로 예상됐던 마크롱마저 돌아서면서 최근 유럽 각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반이민 정서를 막기는 더욱 어렵게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메르켈의 독일도 지난해 12월 아프가니스탄 출신 불법 이민자 78명을 강제추방했다. 2015년 89만명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했지만 지난해는 18만6000명에게만 허용했다. EU는 회원국들에 시리아 내전 등으로 급증한 난민을 할당해 수용하라고 촉구했지만 헝가리와 폴란드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이민자를 지원하는 국제 시민단체 활동을 금지하고, 폴란드가 홀로코스트에 협조했다고 할 경우 처벌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더욱 배타적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프랑스의 이민정책이 EU의 결속력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EU는 솅겐조약에 따라 원칙적으로 회원국들 간에 국경에서 정기 검문을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5년 11월 파리 테러 이후로 예외가 인정돼 테러방지 차원의 불시 국경 검문을 수행해오고 있다. 마크롱 정부는 불법 국경 횡단을 형사처벌하는 자국법을 구실 삼아 불시 국경 검문이 계속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나라들도 프랑스처럼 예외를 인정받은 뒤 자국법을 수정해 국경 검문을 강화하려고 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 회원국 간 자유 이동을 보장한 솅겐조약은 근간부터 흔들리게 되고 EU의 결속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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