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보당국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러시아 해커그룹 ‘팬시베어’의 국방부와 내무부 내부 보안통신망(IVBB)에 대한 해킹 시도를 포착하고 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고 DPA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해커들은 정부 주요 인사들의 통신망에 악성코드를 심어 기밀정보를 유출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군정보당국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팬시베어는 독일·영국 등 유럽 각국 선거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다. 최근에 더욱 잦아진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에 유럽 각국은 비난 수위를 높이며 공동 대응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도 러시아 사이버 공격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평창 올림픽 개회식인 지난달 9일 조직위 홈페이지 등에 대한 해킹이 북한으로 위장한 러시아군 총정보국(GRU) 소행이라고 미 정보기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지난달 24일 보도했다. 지난달 미국과 영국 정부는 지난해 6월 전 세계를 강타한 랜섬웨어 공격을 러시아 정부의 소행으로 지목하고 영국 광고회사 WPP등 기업들이 12억달러가량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나라들에 보복 공격을 가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적대적인 유럽 각국 정치에 개입하려 한다는 의혹도 받는다. 독일 기독민주연합(CDU)은 지난해 9월 당 홈페이지가 해킹당했다고 주장했다. 2015년 독일 연방 하원 컴퓨터 시스템 해킹 배후도 러시아로 추정된다. 지난해 11월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러시아 트위터 계정으로 브렉시트를 부추기는 글이 집중적으로 올라왔다고 보도했다.
서구 언론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조세도피처 블랙리스트인 ‘파나마페이퍼스’에 측근들이 당사자로 자주 언급된 것을 두고 정부 도덕성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로 보고 보복 차원의 사이버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차원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에 EU 회원국들이 공동 대응하는 ‘사이버 솅겐’ 전선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EU 회원국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해 유럽을 하나로 묶는 솅겐조약에서 착안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EU 회원국 25개국이 공동 군사투자 프로그램인 ‘영구적인 구조적 협력(PESCO)’에 합의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PESCO는 경제력에 따른 각국의 군사력 격차를 유럽이라는 규모의 경제로 메꾼다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PESCO를 바탕으로 사이버 솅겐이 구축된다면 나토 사이버 대응군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구소련 국가들은 EU 차원의 대응이 있기 전부터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에 대비해왔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지난해에만 5만여건의 사이버 공격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며 공동 대응 전선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각국이 자국 안보와 연결될 수도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정보 공유를 꺼려 ‘사이버 솅겐’이 실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지난달 초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나토 사이버 대응군 회의가 열렸는데 EU 28개 회원국 중 절반만 참석했다. 이 중에서도 절반인 7개국만 나토 사이버 대응군 정회원이다. 나머지 회의 참석 국가들은 옵서버 자격으로 정회원 가입 여부와 이후 어느 정도까지 공동 대응에 관여할지를 저울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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