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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이탈리아 총선, 극우·포퓰리즘 ‘환호’…EU는 ‘악몽’

축하 키스 세례 이탈리아 총선에서 최다 득표를 한 오성운동의 루이지 디 마이오 대표(가운데)가 5일(현지시간) 로마의 기자회견장에서 인터뷰 도중 현지 저널리스트 엔리코 루치(왼쪽)로부터 입맞춤 세례을 받고 있다. 로마 | AP연합뉴스


“비가 내리지만 멋진 날이군요.”


이탈리아 총선 다음날인 5일 오전(현지시간),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의 대표 루이지 디 마이오는 로마에 있는 자택을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 선거는 극우·포퓰리즘 정당의 승리로 끝났다.


개표율이 95%가 넘어선 이날 오후 2시30분 기준으로 오성운동은 상·하원에서 약 32% 득표율을 기록해 단일 정당으로는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오성운동은 2009년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가 기성 제도권 정치의 부패와 무능을 비판하며 창당한 이후 9년 만에 제1당으로 올라섰다. 전직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우파연합은 37%로 가장 앞섰으나 연합 내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건 극우 성향의 동맹당(18%)이다. 중도좌파 성향의 집권 민주당은 19%로 참패했다.




오성운동은 구체적인 재원 마련 대책은 제시하지 않은 채 세금은 적게 걷고 복지는 확대하겠다고 밝힌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당이다.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즉각적인 추방은 이 당의 대표적인 공약이다. 오성운동 같은 포퓰리즘 정당의 선전은 집권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최근 고조된 반난민 정서가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이탈리아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금까지 성장률이 채 6%가 안될 정도로 활력을 잃었다. 청년 실업률은 30%를 넘나들 정도로 높다. 오성운동은 민주당이 국민연금 수령 연령을 높이기로 한 것에 반대하며, 월 최저 연금수령액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지난달 불법이민자 소행으로 보이는 잔혹 범죄가 일어나면서 이탈리아에서 반이민 정서는 최고조에 달했다. 오성운동은 물론 불법이민자의 즉각 추방을 약속한 동맹당 등 포퓰리즘 정당은 약진했다. 동맹당은 불법이민자를 막기 위해 국경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마테오 살비니 대표는 타 인종 혐오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민주당은 난민이 처음 발을 내디딘 국가에 수용 의무를 규정한 더블린 조약에 반대하고, 유럽연합(EU)이 할당한 난민을 받지 않는 회원국에 대한 지원 중단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오히려 반감만 샀다.


오성운동과 동맹당은 선거 기간 동안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등 유럽통합 움직임에 반대해왔다. 선거 막판 잦아들긴 했지만 오성운동은 이탈리아의 독립적인 재정정책을 펼치기 위해 유로존을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맹당은 여전히 유로존을 탈퇴하길 원하며, EU가 권고하는 재정적자 상한선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3%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프랑스 극우정당 민족전선(FN) 대표 마린 르펜은 이날 트위터에 “우리의 동지이자 친구인 살비니가 포함된 우파연합이 1등으로 총선을 마치고 극적으로 전진했다”며 축하했다.


반EU 정당들이 약진한 것으로 나타나자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한 시간 만에 0.1% 떨어지는 등 요동쳤다. 이탈리아의 국가부채는 GDP 대비 132%로, 유럽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높다. 유로존에서 경제 규모는 독일·프랑스에 이어 3번째로 크다. 가능성은 낮지만 오성운동과 동맹당이 손잡고 독자적인 재정정책을 펼치겠다고 나설 경우 EU에는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과반 정당이 없어 정부를 구성하는 연정협상 결과가 중요해졌다. 하지만 극우·포퓰리즘 정당들이 앞으로도 협상의 주도권을 쥘 것으로 보여 유럽통합 진영으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게 됐다. 살비니 대표는 투표 결과 우파연합 내에서 자기 당이 1위를 할 경우 총리는 자기 몫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를루스코니의 전진이탈리아(FI)는 예상보다 낮은 득표율로 연정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쉽지 않다. 집권 민주당도 낮은 지지율로 과반 정부를 구성할 원동력을 잃어 연정협상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