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미국의 이란 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탈퇴 및 제재 복원에 맞서 경제 활로를 모색하는 데 분주하다. 이란 정부는 11일 이슬람혁명(신정체제 수립) 40주년을 맞아 미국에 대한 비난 발언과 군사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제재 복원이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와 맞물려 이란의 역내 영향력만 강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양국의 대결구도가 어떻게 전개될지도 주목된다.
이란의 한 성직자(오른쪽)가 11일(현지시간) 이슬람혁명 40주년을 기념해 수도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모스크에서 열린 군사전시회에서 이란이 자체 개발한 지대지 미사일을 쳐다보고 있다. 테헤란 | AP연합뉴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이날 테헤란 아자디광장에서 열린 혁명 40주년 기념식에서 “이란은 군사력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의 제재 복원에 대해서도 “이란 국민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서로 도우며 극복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력 확대 의지 확고”
금융제재 피해가기 위해
가상통화 거래 승인 고려
트럼프의 제재 복원 이후
이웃국가와 밀착 분석도
이란 정부는 이날 전부터 ‘공공의 적’ 미국에 대한 비난 발언의 수위를 높이며 내부 결속을 도모해왔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지난 8일 “미국 정권은 악과 폭력의 화신이자 위기를 조장하는 전쟁광”이라고 말했다.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는 지난 7일 탄도미사일 제조시설 동영상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복원이 오는 14일로 100일째를 맞는 가운데 이란은 미국의 금융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란 중앙은행은 지난달 29일 가상통화 거래를 승인하는 초안을 공개했다. 이란 내에서 지불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금지하지만 가상통화를 보유한 사람은 공식 환전소나 국가 지정 은행에서 리알화로 교환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인근 국가와 거래하는 역내 가상통화 발행도 추진키로 했다.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에 반대하는 프랑스·독일·영국은 지난달 31일 유럽국 기업이 이란과 거래할 때 미국 금융 제재를 우회할 수 있도록 돕는 특수목적법인 ‘인스텍스’를 설립했다. 인스텍스는 유럽·이란 기업이 물물교환 등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교환조건을 조정할 예정이다. 이라크 중앙은행은 지난 6일 이란 중앙은행과 양국 기업이 자국 화폐로 거래대금을 결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협약을 체결했다.
이란은 시리아·이라크 등 인접국들과의 경제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이란과 시리아는 지난달 29일 주택·철도·에너지 인프라 구축 등 11건 사업에서 장기간 협력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이라크와의 접경 자유무역지대도 아르반드 한 곳에서 메르한, 바네-마리반 등 세 곳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트럼프 정부의 제재 복원이 이란이 이웃국가들과 경제적·군사적으로 밀착하게 만들고, 이란의 역내 위상만 강화시킨다는 분석도 있다. 이란은 이라크에 에너지 인프라 등을 구축해주고 수출을 늘리고 있다. 이라크는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수입한 전체 비(非)석유 품목 중 20.7%를 이란으로부터 사들였다. 이란은 중국을 제치고 이라크에 비석유 제품을 가장 많이 수출한 나라가 됐다.
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시리아 철군 결정은 오히려 이란에 숨통을 틔워줬다. 바르함 살리 이라크 대통령은 지난 4일 이란을 이라크의 대테러전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치켜세웠다. 이란은 10일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자주권·영토보전 지지 입장을 재차 밝혔다.
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시리아 철군 결정은 오히려 이란에 숨통을 틔워줬다. 바르함 살리 이라크 대통령은 지난 4일 이란을 이라크의 대테러전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치켜세웠다. 이란은 10일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자주권·영토보전 지지 입장을 재차 밝혔다.
트럼프 정부는 이란 제재 복원 이후에도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미 재무부는 지난해 11월 이란 해커들의 범죄수익을 가상통화에서 리알화로 교환하도록 도와준 이란인 2명의 전자지갑 계정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브라이언 훅 국무부 이란정책특별대표는 4일 일본 NHK 인터뷰에서 이란산 원유 수입과 관련해 한국·일본 등 8개국에 한시적으로 적용했던 제재 예외 조치를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3일부터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중동 평화와 안정을 위한 국제회의’에 참석해 반이란 연대를 결집한다는 계획이다.
로하니 대통령도 지난달 이란이 혁명 이후 가장 어려운 때라고 인정할 만큼 이란의 경제난은 심각하다. 미국의 제재 복원 이후 이란 전역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산발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란 정부의 제재 우회로 찾기의 성과도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도 당장 시리아 남서부 골란고원에서 대치하고 있는 이란과 이스라엘 간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고립주의 외교노선에 차질이 빚어지며 난처해진 것은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은 미국에 골란고원 점유에 대한 영토주권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미·이란, 적당한 시점서
합의점 찾기 가능성 제기
미국과 이란이 적당한 수준에서 서로 체면을 살려주면서 합의를 모색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 이란과의 합의에서 규정한 일몰조항(이란 핵개발 제재 조치의 시한부 소멸)을 삭제하는 재협상을 성과로 내세우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의 제재 해제에 이란은 내전지역인 시리아와 예멘에서 군사력 축소를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로 화답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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