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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페루의 케네디’ 가르시아 전 대통령, 오데브레시 스캔들에 극단적 선택

페루 대통령을 두 차례 역임한 알란 가르시아 전 대통령(69)이 브라질 건설사 오데브레시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17일(현지시간) 경찰에 체포되기 전 스스로 총기로 목숨을 끊었다. 한 때 ‘라틴아메리카의 케네디’라고 불리며 존경을 받았던 가르시아 전 대통령의 극단적인 선택에 페루가 충격에 빠졌다고 AP 통신 등이 전했다. 

 

알란 가르시아 전 페루 대통령의 생전 모습. AP통신

 

가르시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경찰이 수도 리마의 자택에 들이닥치자 “변호사와 통화를 하겠다”며 방에 들어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인근 병원으로 즉시 이송됐지만 얼마 안 돼 오전 10시5분 총상에 의한 과다출혈로 사망 판정을 받았다. 

 

가르시아 전 대통령에 대한 부패혐의 수사는 지난해 페루 검찰이 오데브레시 브라질 본사 임원들과 플리바게닝(형량협상)에 성공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오데브레시는 최소 1억8000만달러(약 2050억원) 벌금을 내고 페루 정치인들과 유착관계를 폭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르시아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두 번째 대통령 임기 동안 오데브레시에 대형 공공건물 건설 사업들을 수주할 수 있도록 도운 혐의를 받았다. 오데브레시는 이 기간 페루에서 10억달러 규모 계약을 따냈다. 

 

가르시아는 체포되기 바로 전날인 16일까지만 해도 자신에 반대하는 정치세력들의 마녀사냥이라면서 “다른 사람들은 돈에 팔렸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정부가 출국을 금지시키자 리마의 우루과이 대사관에 망명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마르틴 비스카라 현 페루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가르시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낙담했다”면서 “그의 가족과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가르시아 지지자들은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리마 병원 밖에 몰려들어 그의 이름 “알란”을 거듭 외치며 정부의 반부패수사를 비난했다. 펠리페 칼데론 전 멕시코 대통령은 “공과가 있지만 가르시아는 변화를 통해 페루가 라틴아메리카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 중 하나가 되게 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가르시아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오데브레시 뇌물 스캔들에 연루된 페루 정치인 중 가장 거물로 평가된다. 달변에 좌우를 넘나드는 포퓰리즘 전략가였던 가르시아는 1985년 36세의 나이에 처음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라틴아메리카 선거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 됐다. ‘라틴아메리카의 케네디’라는 별명은 그 때 붙은 것이다. 첫 대통령 임기 때는 정부지출 확대, 노동자 임금인상, 공산품 가격통제 등 좌파 포퓰리즘 정책으로 한 때 90%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았다. 후임 알베르토 후지모리 정부의 반부패 수사를 피해 콜롬비아·프랑스를 전전하다 2001년 귀국한 뒤 두 차례 대선 도전 끝에 2006년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가르시아는 해외 투자 적극 유치, 자유무역 확대 등 친 시장주의 정책 공약을 앞세워 보수 표심을 끌어모았다. 


한편 오데브레시 스캔들 수사는 멕시코부터 아르헨티나에 이르기까지 라틴아메리카 전체로 확대되면서 각국 정치 상황을 뒤흔들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지난해 수사 도중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다른 건설사 OAS에 호화 아파트를 제공받은 혐의가 드러났다. 룰라 전 대통령은 유죄 판결을 받고 결국 후보 등록을 하지 못했다. 호르헤 글라스 에콰도르 부통령은 오데브레시로부터 1350만달러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해 실형을 선고받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브라질을 제외하면 페루가 가장 강력하게 오데브레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오얀타 우말라 전 대통령은 구속됐으며, 알레한드로 톨레도 전 대통령은 미국에서 도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