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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 연방항소법원도 ‘반이민 행정명령’에 제동

<b>아무리 밉다지만…‘이슬람 극단주의 빗댄 트럼프’ 독일 슈피겔 표지 논란</b>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4일(현지시간) 한 시민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해 독일 주간지 슈피겔의 최신호 표지를 그린 팻말을 들고 있다. 슈피겔은 이날자 잡지 표지에 참수한 자유의 여신상 머리와 피 묻은 칼을 든 트럼프의 만화 이미지를 실어 논쟁의 중심에 섰다. 슈피겔과 만평가는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트럼프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트럼프와 이슬람 극단주의를 단순하게 동일시하면서 테러 희생자들에게 2차 가해를 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덴버 | AP연합뉴스

아무리 밉다지만…‘이슬람 극단주의 빗댄 트럼프’ 독일 슈피겔 표지 논란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4일(현지시간) 한 시민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해 독일 주간지 슈피겔의 최신호 표지를 그린 팻말을 들고 있다. 슈피겔은 이날자 잡지 표지에 참수한 자유의 여신상 머리와 피 묻은 칼을 든 트럼프의 만화 이미지를 실어 논쟁의 중심에 섰다. 슈피겔과 만평가는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트럼프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트럼프와 이슬람 극단주의를 단순하게 동일시하면서 테러 희생자들에게 2차 가해를 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덴버 |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 효력을 정지하라는 연방법원 결정이 나왔다. 각국 항공사들은 트럼프가 입국절차를 금지한 이슬람 7개국 국적자의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발권했고 미국 공항에는 환영 인파가 몰려나왔다.


트럼프 정부는 곧바로 행정명령의 효력을 복구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연방항소법원도 이를 거부했다. ‘이데올로기 싸움’ 양상으로 치닫는 미국 비자 논란은 대법원으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혼란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주 시애틀 연방지법은 3일(현지시간) 이슬람 7개국 국적자의 미국 입국과 비자발급을 최소 90일간 금지시킨 대통령 행정명령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워싱턴 주정부가 지난달 30일 낸 반이민 행정명령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연방지법의 결정은 미국 전역에 적용된다. 그동안 뉴욕, 미시간 연방법원이 추방을 막아달라는 7개국 국적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적은 있지만, 반이민 행정명령의 효력 자체를 정지시킨 연방법원 결정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시애틀 법원의 제임스 로바트 판사는 이날 결정에서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기독교도인에게만 우호적이고 무슬림에게는 배타적인 결정이며 헌법과 미국적인 가치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끔찍한 결정”이라고 법원을 비난했다. 법무부는 즉시 연방항소법원에 항고하면서 행정명령의 효력을 복구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샌프란시스코의 제9 연방항소법원은 이를 거부하고 항고심 절차를 준비하라고 요구했다.


트럼프 정부는 반이민 행정명령을 강행하려 하지만, 일단 전국에서 효력이 정지되면서 그동안 중단됐던 7개국 국민의 입국이 재개됐다. 법원 결정에 따라 국무부는 7개국 국민들에게 이미 발부된 비자의 효력을 원상회복시켰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따라 적법하게 발급된 비자임에도 무효화된 것이 6만건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항공사들은 탑승이 거부되었던 이들 국적자에게 항공권을 내줬고, 4일 미국 곳곳 공항에서는 마침내 입국한 이들과 환영인파가 모여들었다. 보스턴 국제공항에는 “난민들을 환영한다” “기독교인들은 장벽이 아니라 서로를 잇는 다리를 만들 것”이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나온 이들이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기를 타고온 이란, 시리아 국적자 40여명을 반겼다.


미 연방항소법원도 ‘반이민 행정명령’에 제동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시애틀 법원 결정에 대해 “헌법의 승리이자 우리 모두의 승리”라고 치하했다. 제이 인슬리 워싱턴 주지사는 “대통령을 비롯해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결정”이라고 말했다. 반트럼프 시위대도 다시 뭉쳤다. 4일 시위대 3000명이 트럼프가 머물고 있던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 앞에서 퇴진 요구 시위를 했다.


그러나 행정명령을 둘러싼 법정 싸움은 이제부터다. 워싱턴주뿐 아니라 미네소타주도 연방법원에 행정명령 효력정지를 청구한 상태다. 법무부는 4일 곧바로 제9연방항소법원에 항고장을 내고 행정명령의 효력을 복구해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에게는 특정인의 입국금지를 명령할 헌법적 권한이 있으며, 시애틀 연방법원이 행정명령 효력정지를 결정한 것은 권력남용이라고 반박했다. 법무부는 항고장에서 워싱턴과 미네소타 주정부가 “국가안보에 대한 대통령의 판단을 억측해” “공공에 해를 미치는” 결정을 법원에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항소법원은 5일 연방정부의 긴급 요청을 거부했고, 법무부와 워싱턴주 양측에 이튿날 오후까지 각기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항소법원이 법무부 요청을 거부함으로써 “미국인들을 테러리즘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국경 통제를 강화하려던 트럼프 정부는 법적으로 불리한 처지가 됐다”고 보도했다.


캘리포니아, 워싱턴, 오리건 주 등을 관할하는 제9연방항소법원에서는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 애리조나 연방지법 판사 등 3명이 재판부를 구성해 트럼프 정부의 요구가 적법한지 판단하게 된다. 통상 항고가 제기되고 첫 변론기일이 잡힐 때까지는 한 달 가까이 소요된다. 다만 긴급한 사안이라고 판단되면 판사 1명이 단독으로 심리하거나, 재판부가 판결을 앞당길 수 있다. 정부의 요청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7개국 국민들의 비자는 효력을 가지며, 출입국 관리당국은 이들을 강제로 추방할 수 없다.


항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트럼프 정부는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갈 게 뻔하다. 반대로 항소법원이 행정명령의 효력을 되살리면 각 주정부와 시민단체들이 대법원에 재항고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소송을 낸 밥 퍼거슨 워싱턴주 법무장관은 3일 CNN 인터뷰에서 필요하다면 연방대법원까지 소송을 끌고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법원은 보수 4명 대 진보 4명의 대법관들로 이뤄져 있다. 트럼프는 공석인 대법관 자리에 강경 보수파인 닐 고서치를 지명한 후 상원 인준을 기다리고 있다. 시애틀 법원의 결정에 대한 재판 외에, 트럼프의 행정명령 자체가 위헌인지를 가리는 위헌소송도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