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

로큰롤의 다른 이름, Chuck Berry Chapter1

Special로큰롤의 다른 이름, Chuck Berry Chapter 1

Chuck Berry가 현지시간으로 18일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외곽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90세. 찰스카운티 경찰은 이날 낮 12시 40분쯤 긴급 전화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나 이미 도착했을 때는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고 전했다. 경찰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그의 본명을 가리켜 "슬픈 마음으로 전설적인 뮤지션 Charles Anderson이 사망했음을 알린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Berry는 기타리스트이자 'Johnny B. Goode', 'Sweet Little Sixteen' 등의 명곡을 만든 작곡가이기도 하다. 개러지 밴드들이나 로큰롤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 이 곡은 필수관문이었다.
Rod Stewart는 트위터에 "처음으로 산 앨범이 Berry의 티볼리 라이브 앨범이었다"면서 "이후로 나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썼다. 'Hot Legs'와 그가 밴드 Faces와 함께 했던 시절 쓴 'Stay With Me'는 Berry에게서 영향받은 곡들로 꼽힌다. 그는 "Berry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됐고, 우리는 모두 그의 영향을 받았다"는 트윗으로 Berry의 위상을 설명했다.
NO
곡명
아티스트
앨범
좋아요
뮤비
다운
1
  Hot Legs Hot Legs
2
    
Bruce Springsteen은 이날 트위터에 "Berry는 록계 가장 위대한 현역이자 기타리스트였으며, 여지껏 가장 위대한 순정 로큰롤 작곡가였다"고 쓰며 추모했다. The Rolling Stones도 밴드 웹사이트에 "그는 진짜 로큰롤의 선구자였으며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줬다"고 글을 남겼다. 밴드는 1963년 데뷔싱글로 Berry의 'Come On'을 커버했다. 냉소적인 해석덕분에 곡은 더욱 도드라져 보였고 영국에서만 발매돼 차트 21위까지 올랐다.
The Rolling Stones는 1963년 데뷔싱글로 Berry의 'Come On'을 커버했다. 냉소적인 해석덕분에 곡은 더욱 도드라져 보였고 영국에서만 발매돼 차트 21위까지 올랐다. 밴드는 'Carol'을 더욱 흥겨운 곡으로 재탄생시켰으며, 이외에도 'Little Queenie' 등 많은 곡을 커버했다. 빌보드지는 "Berry가 없었다면 The Rolling Stones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로 Berry의 영향력을 표현했다.
NO
곡명
아티스트
앨범
좋아요
뮤비
다운
1
  Come On Come On
2
  Carol Carol
3
    
The Beatles도 Berry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Roll Over Beethoven', 'Rock And Roll Music' 등을 커버했다. John Lennon은 "로큰롤에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Chuck Berry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Lennon도 Berry의 곡 'You Can't Catch Me'를 커버했다. Beach Boys가 'Sweet Little Sixteen'을 대놓고 표절해 'Surfin' U.S.A.'를 만들었던 건 유명한 일화다. 작곡가 크레딧에는 Berry의 이름이 Brian Wilson과 함께 올라가 있다.
NO
곡명
아티스트
앨범
좋아요
뮤비
다운
1
2
3
4
5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뮤지션들이 Berry의 곡을 재해석했다. Jimi Hendrix부터 MC5, Motorhead, Yardbirds, AC/DC에 이르기까지 펑크, 메탈 밴드할 것 없이 록의 선구자 Berry가 남긴 명곡들을 다시 연주하고 불렀다. 소울 뮤지션 Nina Simone은 'Brown Eyed Handsome Man'에서 기타 리프를 빼고 대신 익살스런 혼섹션과 보컬을 더해 새로운 곡으로 탈바꿈시켰다.
NO
곡명
아티스트
앨범
좋아요
뮤비
다운
1
2
3
4
5
    
뮤지션들이 Berry를 추앙해 마지 않는 까닭은 그가 로큰롤의 원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리듬앤드블루스를 토대로 한 컨트리풍 곡들을 써내며 음악의 '흑백'결합을 꾀했다. Elvis Presley가 백인임에도 흑인음악을 끌어 안아 대스타가 된 것과 정반대 길을 걸었던 셈이다. 여하튼 이름만 있을 뿐 실제 형식이 갖춰져 있지 않던 로큰롤이라는 장르가 Berry에 의해 틀이 잡히면서, 1950년대 이후 수많은 로큰롤 밴드들이 출연했다.
Berry는 로큰롤 기타 주법의 토대를 닦기도 했다. 기타의 5,6번째 줄을 이용한 3도, 5도 화음을 사용한 리프의 창시자로 일컬어진다. 1920년대 블루스 연주자들이 이미 선보인 방식이지만 Berry는 여기에 벤딩을 적절히 섞어 음의 파괴력을 배가시켰다. 미국 지역언론 시카고트리뷴은 그의 기타톤을 트럼펫에 비유하기도 했다.
Berry는 1955년 발표한 첫 싱글 'Maybelline'이 빌보드 리듬앤드블루스 차트 1위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다. 로큰롤의 정수로 꼽히는 대표 곡 'Johnny B. Goode'은 우주선에도 실렸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는 1977년 태양계 바깥을 탐사하려고 쏴 올린 무인 우주선 보이저에 이 노래를 실었다. 우주에 지구의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이를테면 'Johnny B. Goode'은 지구 대표 곡이었던 셈이다. Berry는 198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오리처럼 엉덩이를 뒤로 빼고 한 발로 껑충거리며 연주하는 건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Berry는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고향 무대에서 팬들에게 오리걸음 연주를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지난해 근 40년 만에 첫 정규앨범을 내겠다고 말해 록 팬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멈출 것 같지 않아 보였던 로큰롤 열차는 거기서 멈췄다. 1926년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나 로큰롤의 선구자가 되기까지의 그의 인생사와 Bob Dylan이 "로큰롤 계의 셰익스피어"라고 찬사해마지 않았던 노랫말은 2회에 살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