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4월26일 스페인 내전 당시 가장 악랄한 공격이었던 독일군의 게르니카 공습이 일어난 지 80년이 됐다.
마드리드 시의회가 내전의 아픈 기억을 도려내는 마지막 작업을 했다. 26일(현지시간) 시의회가 알무데나 묘지에 묻혀 있는 독일 ‘콘도르비행단’ 조종사 7명의 무덤 앞 외벽을 들어냈다고 엘파이스 등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시의회는 마드리드 주재 독일대사관이 먼저 서한을 보내 외벽을 없애고 개인별로 작은 비석을 세워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시의회는 성명에서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된다는 갈망이 묘지 외벽 해체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이 외벽이 어두운 과거의 상징이 된 것은 벽에 쓰인 문구 때문이다. 외벽 맨 위에는 콘도르비행단 표식과 함께 “여기 자유로운 스페인을 위해 싸운 조종사들이 묻혀 있다”는 독일어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 아래에는 스페인어로 “신과 스페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일 비행사들”이라고 쓰여 있다. 그런 말이 쓰인 벽이 여전히 철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2년8개월여에 걸친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 프란시스코 프랑코 측에 콘도르비행단을 빌려줬다. 1936년 2월 총선으로 좌파 인민전선 내각이 들어서자 쿠데타로 정권을 뒤집고 내전을 일으킨 프랑코를 지원한 것이다. 나치는 스페인에서 자국 공군을 훈련시켰다.
그 결과 일어난 참극 중 하나가 민간인들을 학살한 게르니카 폭격이었다. 콘도르비행단은 민간인 지역 폭격을 기습공격의 ‘연습 대상’으로 삼았고, 프랑코는 자신에 반대하는 바스크 민족주의 세력을 뿌리뽑을 기회로 여겼다. 바스크 지역의 소도시이던 게르니카의 시장에 대한 공습이 4시간이나 이어졌다. 투하한 폭탄은 7000개, 무게는 31t에 달한다. 약 3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주민 7000여명 중 3분의 1이 숨지거나 다쳤다.
폭격의 참상은 게르니카의 외신기자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파블로 피카소는 참상이 담긴 보도사진을 본 뒤 며칠 만에 대작 ‘게르니카’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마드리드 국립 레이나소피아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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