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트럼프, ‘골란고원 선언’ 노골적인 네타냐후 편들기…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 남서부 골란고원에서 이스라엘의 영토 주권을 인정하는 포고문에 25일(현지시간) 서명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날 서명은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동 뒤 나왔다. 다음달 9일 이스라엘 총선을 앞두고 잇달아 부패혐의로 기소되고 야당에 밀리며 고전하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에 힘을 실어주는 조치로 해석된다. 하지만 다른 중동 국가들과 관계만 악화시키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발언권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동 뒤 골란고원에 관한 이스라엘의 영토 주권을 인정하는 선언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워싱턴|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포고문에서 “이란과 헤즈볼라(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를 포함한 테러리스트들이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미국은 골란고원의 이스라엘 영토 주권을 인정한 최초의 국가가 됐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시리아에서 영토를 빼앗아 불법 점유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날 서명식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포고문 서명 뒤 “우리의 관계는 강력하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도 “당신은 항상 같은 자리(이스라엘 편)에 있어줬다”면서 “이스라엘은 당신보다 더 좋은 친구를 둔 적이 없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AP통신은 양국 정상이 90분간 회동했으며 네타냐후가 백악관 집무실 앞뜰에 등장할 때부터 네 차례나 기자들이 회동 장면을 촬영할 수 있도록 초청했다고 전했다. 유에스에이투데이는 트럼프와 진짜 ‘브로맨스(남자들 사이 우정)’를 맺고 있는 외국 정상을 꼽으라면 그 사람은 네타냐후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사국인 시리아는 물론 인접국이자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인 터키, 유엔까지 나서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를 비난했다. 시리아 외교부는 “세계 법질서를 최고 수준으로 경멸했다”면서 “미국은 자신들이 아랍 세계의 주적임을 증명해보였다”고 말했다. 터키 정부도 “미국은 국제법을 무시했다”면서 “이번 결정으로 역내 긴장만 고조될 것”이라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병합은 국제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한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끝까지 고수할 것이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사회 반발에도 네타냐후의 이스라엘 정부를 지지하는 배경이 주목된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양국 정상 모두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국내정치용 성격이 강하다”면서 “특히 트럼프는 유대인, 더 넓게 보면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를 끌어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해 여론조사기관 갤럽 설문에 따르면 미국 유대인들의 트럼프 정부 지지율은 26%에 불과했다면서 트럼프가 극단적인 친유대인 정책으로 지지율을 높이려 한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정부가 유대인 로비단체로 가장 정치후원금을 많이 내는 단체 중 하나인 미국·이스라엘공공문제위원회(AIPAC)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된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연례 AIPAC 회의에서 “하마스(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장정파)는 테러리스트”라면서 “미국은 절대 테러리스트들과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가 중동정책의 기본 노선인 반이란 강경책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네타냐후 총리의 재집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이스라엘 야당 연합 ‘청백동맹’을 이끌며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베니 간츠는 전직 군 참모총장 출신으로 강한 이스라엘군을 지향하지만 외교적인 해법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에서 이스라엘군 철수 필요성을 언급하는가 하면, 최대 군사위협인 이란을 직접 타격해야 한다는 의회 내 일부 보수 강경파들의 주장에 맞서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의 노골적인 친유대인 정책이 중동 지역 혼란상만 증폭시키고, 오락가락 외교노선으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발언권만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백악관 중동정책 조정관을 지낸 필립 고든은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 병합까지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다”고 지적했다.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인 재러드 쿠슈너가 ‘신중동평화계획’을 발표하기도 전에 아랍 국가들의 거센 반발을 사며 그간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틴 인디크 전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는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을 반대하고 2016년 다른 국가들과 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다”면서 “골란고원 선언은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