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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트럼프의 이란 제제 효과 발휘하나, 경제난에 흔들리는 하메네이 리더십

미국의 대이란 제재 복원 이후 이란 경제가 저점을 찍으면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 반대하는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달 이슬람 시아파 성직자를 살해한 범죄자의 소셜미디어 계정은 범행 직후 팔로어 수가 오히려 급증했다. 최고지도자가 최고 통수권자인 정예군 혁명수비대의 총사령관 교체도 흉흉한 민심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이슬람 고위 성직자와 회동하며 하메네이에 대립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하며 이란 압박을 본격화한 지 오는 8일(현지시간)로 1년째다. 이란이 이로 인한 극심한 경제난에 세계 유일의 신정(이슬람법학자 통치) 체제까지 위협받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특히 성직자 살해는 신정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된다. 이란 하마단의 시아파 성직자 호자톨레슬람 모스타파 가세미가 지난달 26일 전직 군인 베흐로즈 하지루에게 총격 피살당했다고 파르스통신 등이 보도했다. 하지루는 혁명수비대 특수부대 쿠드스 출신으로 알려졌다. 시아파가 다수인 이란에서 수니파 성직자 살해 사건은 종종 벌어지지만 시아파 성직자가 살해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루는 범행 직후 인스타그램에 범행 사실을 알리면서 군인들에게 “이란 신정 체제에 봉기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주변의 혁명수비대 출신들이 앞으로 더 많은 성직자를 살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 경찰이 이튿날 총격전 끝에 그를 사살하면서 정확한 범행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세미가 과거 시아파가 다수인 인접국 이라크와 연대 강화를 촉구하고, 이슬람 교리를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에 대한 반발로 해석된다. 

 

하지루가 범행 사실을 밝힌 이후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어 수는 순식간에 10만명을 넘겼다. 그의 계정에는 “이란에서 성직자를 한 명이라도 더 줄여야 한다”는 댓글이 잇따랐다. 이란 여배우 마흐나즈 아프샤르는 가세미의 사망을 애도하는 대신 그의 과거 발언들을 비난했다. 개혁성향의 모하마드 하타미 정부에서 대변인을 지낸 압돌라 라메잔자데는 “이란 보안당국의 우선순위가 얼마나 잘못됐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당국은 여성들의 히잡 착용 단속에만 집착해 2년 넘게 범인이 소셜미디어에서 제기하던 위협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지난달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을 모하마드 알리 자파리에서 호세인 살라미로 교체한 것을 두고 대규모 홍수 피해로 성난 민심을 달래려는 조치라는 시각도 있다. 남서부 후제스탄주와 북서부 일람주에서는 지난 3월부터 3주째 이어진 홍수로 최소 70명이 숨졌다. 이란 전체 31개 주 가운데 25개 주가 수해를 입었다. 이란 정부는 전국에서 교각 725개가 완파되고, 1만4000㎞의 도로도 유실 또는 부분 파손됐다고 집계했다. 후제스탄주는 일부 유전 가동이 중단됐다. 혁명수비대는 국방뿐만 아니라 인프라·에너지 부문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외교 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혁명수비대 고위 간부들이 재난지역을 방문했다가 주민들의 거센 원성만 들었다면서 이같은 분위기가 총사령관 교체의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정부의 이란 핵합의 탈퇴 이후 경제난이 장기화되고 있는데도 이슬람법학자 통치 체제가 서구 국가들을 비난하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데 따른 불만이 함께 터져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정부의 지난해 11월 대이란 제재복원으로 이란의 경제난은 더욱 가중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란의 경제성장률이 전년 대비 6%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율은 37.2%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온건보수 성향의 로하니 대통령도 하메네이와 대립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로하니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지난 3월 이라크의 시아파 성지 나자프를 방문해 이곳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이란의 성직자 대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와 만났다. 시스타니의 이슬람법 해석은 하메네이의 해석보다 더 권위가 있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어 로하니 대통령의 회동은 하메네이 리더십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시스타니는 당시 회동에서 “성직자는 조언할 뿐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로버트 글리브 영국 엑서터 대학 교수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로하니는 이슬람법학자 통치체제가 만능이 아니라고 믿는 이들에게 여지를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금 고갈에 시달리는 로하니 정부는 종교학교 지원금을 약 3분의 1로 줄였다. 

 

한편 트럼프 정부는 연일 이란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혁명수비대를 외국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데 이어 지난 2일에는 일부 국가들에 대한 이란산 원유 금수 면제 조치까지 종료했다. 4일에는 이란 핵합의에서 민수용 핵개발 활동으로 용인한 우라늄 저농축과 중수로 생산까지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5일에는 이란으로부터 위협이 증대되고 있다며 중동에 항공모함과 폭격기 기동부대까지 파견하며 군사적 긴장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