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 미·중 경제전쟁이 무역분쟁에서 환율전쟁으로까지 확전됐다. 이번 조치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원했던 약달러(달러 가치 하락)를 추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환율시장 개입 조치를 꺼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를 향한 기준금리 인하 압박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중국은 역사상 거의 최저 수준으로 통화가치를 떨어뜨렸고 그것은 ‘환율조작’이라고 불린다”면서 “연준, 듣고 있나”라고 썼다. 중국에서는 정부 기관이 나서 달러 대비 환율을 높여 자국 기업들이 이득을 보게 하고 있는데, 미국 정부는 연준에 발목이 잡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2.0%~2.5% 사이로 관리하면서 트럼프의 금리 대폭 인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임기 초반부터 약달러를 선호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날달 초 다시 연준에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중국과 유럽은 미국과 경쟁하기 위해 엄청난 환율조작 게임을 벌이고 있고, 그들의 시스템 안으로 돈을 끌어오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그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년 간 그랬듯이 바보처럼 뒷자리에 공손하게 앉아서 그들의 게임을 지켜봐야만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환율시장에서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달러당 7위안 선이 조만간 깨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던 때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달러 가치가 여타 기본 경제 지표에 비해 최소 6%에서 많게는 12%까지 높게 평가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의 약달러 선호, 기준금리 대폭 인하 요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수치였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까지 지정한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시장에 개입할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초 트럼프가 측근들에게 달러화 가치를 지속적으로 떨어뜨릴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말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대통령이 환율시장 개입은 배제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나는 그걸 2초만에도 할 수 있다. 뭘 안 하겠다는 말은 안 했다”면서 곧바로 반박했다.
연준이 계속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지 주목된다. 연준 직원들은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연준은 달러 가치에 영향을 주는 조치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 정부 통화정책의 리더는 재무부라고 재차 확인하는 등 선을 그었다. 하지만 시카고상품거래소(CME)는 9월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추가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100%로 봤다.
연준의 추가 기준금리 인하 외에 약달러를 가능케하는 조치로는 환율안정기금(ESF)을 동원한 외화 매입이 꼽힌다. 미국 재무부는 2000년 9월 ESF 자금으로 약 13억달러의 외화를 사들였다. 하지만 미국 기업의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약달러 조치는 아니었다. 당시 유럽 다수국의 통화인 유로화가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국제사회 차원의 긴급 조치였고, 이후 ESF를 동원한 대규모 외화 매입은 없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당장 ESF를 끌어들인다고 해도 목표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ESF의 외화매입용 달러 보유고는 126억달러 미만으로 환율전쟁에서 최종 승자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경제연구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폴 애슈워스는 “그보다 더 많은 자금을 보유한 헤지펀드는 수없이 많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의 달러 보유고는 지난달 기준 3조1000억달러로 추산된다. ESF 자금보다 20배 넘게 많다. 전 세계 환율시장 일일 총거래량(5조달러)의 60% 수준이다. 이런 까닭에 트럼프 대통령은 장기간 지속적으로 약달러 효과를 낼 수 있는 기준금리 인하에 더욱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트럼프 정부가 약달러를 강하게 밀어붙인다면 세계 경제 혼란은 불가피하다. 우선 준비통화(국제 결제수단으로 사용되는 통용성이 높은 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게 되고, 시장 불안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전직 재무부 관료 브래드 셋스터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미국이 더 이상 세계 경제성장의 기관차로서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문은 미국의 비교적 강한 경제성장세, 그간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및 유지 기조로 올해 주요 통화 대비 달러화 강세가 더욱 두드러졌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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