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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프란치스코 교황 “핵무기, 보유 자체로 비도덕적”…37년 만에 교황청 공식 강령 바꾼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핵무기 보유를 부도덕한 행위로 규탄하는 내용의 새 강령을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을 방문했던 교황이 26일(현지시간) 바티칸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유하는 행위 자체로 비도덕적”이라면서 “이 의견은 가톨릭 교회 교리 문답서에 반드시 기록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실제로 새 강령이 채택되면 교황청은 37년 만에 핵무기 관련 공식 입장을 바꾸는 셈이다. 1982년 6월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핵무기 보유국들이 서로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군축을 해야 한다는 강령을 채택하면서도 핵무기 보유 자체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주요 외신들은 그만큼 프란치스코 교황이 1980년대 냉전시대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한편으로 현재 핵무기를 둘러싸고 국제 사회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위협은 최근 러시아와 미국의 잇따른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탈퇴다. INF는 1987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맺은 조약이다. 사거리 500~5500㎞의 중·단거리 탄도 및 순항미사일 등 지상발사 핵미사일의 생산·실험·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다. 당시 냉전 해체의 상징적 조치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양국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상대방의 협정 위반을 문제 삼으며 탈퇴를 언급해왔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7월  조약 탈퇴 법령에 서명하면서 탈퇴를 공식화했다. 미국은 바로 다음달인 지난 8월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INF에 묶여 쓸 수 없었던 미사일을 아시아 지역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물론 INF에서 빗겨나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해 온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방문은 교황으로서는 38년 만의 아시아 국가 방문이다. 핵보유 강대국들의 다툼에 당장 한반도 일대는 물론 그 주변에서도 핵무기 사용 위험이 증가하고 있는 것에 경종을 울리는 행보로 볼 수 있다. 미국의 새 미사일 배치 지역으로는 현재 괌이 가장 유력하게 꼽힌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재래식 미사일이지만 북한으로서는 근거리에 미국의 미사일 위협이 추가되는 만큼 경계 태세가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미국이 이라크 침공, 리비아에서 군사작전을 벌였을 때를 참고해 미국의 대규모 병력·무기·물자 운반이 감지될 경우, 미사일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미국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하지만 북한은 미사일 요격기술이나 괌의 미사일 동향을 참지할 수 있는 전략 조기경보 능력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그런 만큼 잘못된 정보 수집, 지도자의 오판에 따른 핵전쟁 발발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이날 교황은 핵무기 보유 자체를 규탄하는 이유에 대해서 “우발적인 사고, 혹은 일부 지도자의 광기때문에 인도주의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 강령 채택 계획까지 밝히면서 핵위협 증가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미국·러시아의 군축 노력 포기에 대한 비난 여론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국제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데이비드 말로이 주교는 이날 성명에서 “교황의 일본 방문은 모든 생명을 보호하는 행위였다. 교황은 전 세계에 핵무기 없는 세상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 단계로 미국과 러시아가 전략핵무기 숫자 감축에 합의한 뉴스타트 협정 이행사항을 확대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