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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박효재의 '딥다 파기']미국, 이란 무시하기 전략 더는 안 통한다

 

미국의 이란산 원유 구입 금지 조치 등 경제 제재가 장기화되는 데도 이란이 끄덕없다는 듯 연일 과감한 행보를 선보이고 있다. 이란은 지난 7일(현지시간)부터 남부 포르도의 지하 핵시설에서 우라늄 농축을 재개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일방적인 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탈퇴에 맞서 이행 수준을 낮추는 네 번째 조치였다. 이어 지난 10일에는 페르시아만 연안 부셰르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러시아와 함께 2차 원자로 건설을 시작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이란을 고립시키기 위해 중동 동맹국들은 물론 유럽국들까지 동원해 ‘이란최대압박’ 전술을 펼치고 있지만, 최근 이란의 역내 영향력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보고서까지 나왔다. 영국 런던 소재 국제전략연구소(IISS)는 이란이 미국의 걸프 동맹국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중동에서 영향력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는 217쪽짜리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이란최대압박 전술 1년 즈음인 지난 5일 이란의 경제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 않으며 역내 최강국 지위를 굳건히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무시하기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란 지적과 함께 이란 저력의 배경이 주목받는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이란의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로 전망한 것과 달리 일자리 상황은 안정적이다. 이란 정부가 지난달 초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따라 발표한 올해 여름분기 총 고용인구는 2475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에 직격탄을 맞았던 지난해 동기 대비 3.3% 늘어났다. 지난해 여름분기 이후 약 80만개의 일자리가 생겼고, 전년 동기 대비 제조업 분야 고용률은 4.6% 증가했다. 

 

포린어페어스는 미국은 이란이 중동지역 다른 산유국에 비해 석유 의존도가 낮고 산업구조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2017년 기준으로 사우디의 석유수출은 전체 수출의 78%를 차지하는 반면, 이란은 43%에 그쳤다. 또 이란 내 석유부문 노동자 비율은 채 0.5%도 안 될 정도로 낮다. 여기에 이란 정부의 농업·서비스 부문 활성화 정책이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면서 미국 제재로 인한 충격을 흡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달러화 대비 이란 리알화 가치는 11만5000리알에서 12만리알 사이를 오가며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내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벗어날 것이라는 전망까지 조심스레 나온다.

 

이란의 역내 영향력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터키의 공격 위협에도 비용문제를 들먹이면서 대테러전 파트너인 쿠르드민병대(YPG)까지 버리고 시리아에서 미군을 대거 철수시키면서 생긴 힘의 공백을 파고드는 모양새다. 이란은 러시아와 함께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있다. 이란이 지원하는 예멘 후티 반군은 사우디가 지원하는 정부군으로부터 수도 사나를 탈환한지 벌써 5년 째로 북부 지역 대부분을 점령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사담 후세인 정권 제거 후 이슬람 시아파 정부가 들어선 이라크는 미국의 제재에도 동참 거부 의사를 밝히며 같은 시아파 정부인 이란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상황이다. 이란이 지원하는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수니파와 기독교 마론파, 무당파가 연대한 정파 ‘미래운동’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다. 

 

 

이란이 역내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슬람법학자 지배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있다. 런던 IISS는 혁명수비대 내에서도 특수부대인 쿠드스 최고사령관을 정점으로 하는 군사기반 외교활동이 이란의 역내 영향력 유지에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쿠드스는 이른바 이란 대리무장세력으로 불리는 헤즈볼라, 후티 반군은 물론 이라크 내 친이란 무장조직에 무기를 제공하고 군사훈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을 거치지 않고 최고지도자와 직접 소통하는 쿠드스 사령관은 군의 수장일 뿐만 아니라 외교관 역할까지 수행한다. 로이터통신은 카젬 솔레이마니 쿠드스 최고사령관이 최근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이라크를 지난달 말 방문해 원내 제2당 대표 하디 알아리미를 만나 아딜 압둘 마흐디 현 총리 사퇴를 요구하는 야당의 움직임을 저지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경제·군사·외교 부문에서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더욱 과감한 행보를 보일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비용이 적게 드는 드론으로 사우디 아람코 시설을 재차 공격해 석유시장을 교란시키거나 핵개발 위협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주영국 이란 대사관은 IISS 보고서 관련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란 무시하기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란은 계속 저항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