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축구협회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스포츠 스타들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축구협회가 모든 선수와 코치에게 국가와 국기에 존경을 표하는 의미로 경기 전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기립을 의무화하는 규정을 통과시켰다고 4일 ESPN 등이 보도했다.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앉아 있거나 국기를 등지는 행위 등도 허락되지 않는다. 축구협회는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하는 규정도 논의하고 있다며 으름장을 놨다.
지난해 9월 미국 여자 축구대표팀과 태국 국가대표팀 간 친선경기가 발단이 됐다. 미국팀 선수인 메간 라피노(사진)는 당시 경기 전 국가가 연주될 때 일어서지 않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앞서 지난해 8월 미식축구 시범경기에서 흑인과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국가에 존경심을 표할 수 없다며 기립을 거부한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쿼터백 콜린 캐퍼닉에 연대감을 표시한 행동이었다. 라피노는 자국 프로리그 클럽팀 시애틀 레인 소속으로 뛸 때도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었다. 구단은 라피노의 행동이 몇몇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가 정치적인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했다.
축구협회의 입장은 달랐다. 협회는 당시 낸 성명에서 “우리는 선수와 코치들이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서서 국기에 존경심을 표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가 연주시 기립은 바람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지켜야 될 의무사항이 됐다. 선수뿐만 아니라 코치, 감독 등 축구협회에 소속된 사람들은 모두 국가와 국기에 존경심을 표시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야만 한다. 이 규정은 지난달 9일 하와이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수닐 굴라티 협회장은 협회 차원에서 이를 위반했을 경우 처벌하는 규정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종목이긴 하지만 국가 연주 때 기립을 거부해 실제 징계를 당한 사례가 있다. 1996년 3월 미 프로농구(NBA) 덴버 너기츠의 마무드 압둘 라우프는 올랜도 매직과의 경기 시작 전 미국 국가가 연주될 때 기립을 거부해 한 경기 출장금지를 당했다. 무슬림이었던 라우프는 이슬람교 교리에 위배된다며 기립을 거부했다. 하지만 이후 국가 연주 때마다 일어나는 대신 머리를 숙여 기도하는 타협점을 찾아 징계를 피해갔다.
라피노보다 먼저 기립을 거부했던 캐퍼닉은 다음 시즌부터는 기립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ESPN은 지난 2일 소식통을 인용해 캐퍼닉은 자신의 저항방법이 이미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믿으며, 더 이상 그 가치가 훼손되지 않길 바라는 의미로 기립거부를 중단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캐퍼닉은 시범경기 기간 내내 기립을 거부했으며 정규시즌 16경기에 나서면서도 국가가 연주될 때 기립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캐퍼닉은 그에게 더 좋은 다른 나라를 찾아야할 것”이라고 조롱했다.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도 “바보같고 무례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캐퍼닉은 지난해 8월26일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경기장에서 열린 그린베이 패커스와 시범경기에서 처음으로 기립을 거부했다. 국가가 연주될 때 상대팀은 물론 포티나이너스 선수 전체가 일어서는 데도 꿈쩍하지 않으며 언론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경찰의 무력진압에 흑인들이 사망하는 일이 잇따르자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서였다. 캐퍼닉은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으며 “흑인들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지지해왔다. 캐퍼닉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거리에 시신들이 넘쳐나는데 그들은 살인을 저지르고는 휴가를 떠난다”며 경찰들을 비난했다. 구단은 캐퍼닉이 정치적 신념에 따라 행동할 권리가 있다며 지지했다. 다른 미식축구 선수들은 물론 미 프로농구(NBA) 선수들도 그의 저항에 박수를 보냈다.
캐퍼닉은 단순 저항에 그치지 않고 인종차별문제 해결을 위해 일하는 단체에 100만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의 유니폼을 팔아 번 수익도 모두 이들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매달 10만달러씩 10개월 동안 기부해 100만달러를 채우겠다면서 기부내역을 웹사이트에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캘리포니아 산호세, 위스콘신 밀워키, 텍사스 댈러스에 있는 인권단체 네 곳에 2만5000달러씩을 기부하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구단도 그에 발맞춰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의 2개 단체에 100만달러를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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