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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트럼프 “낙태 돕는 국제단체 지원금 못 줘”


낙태를 강경하게 반대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낙태를 지원하는 일이면 개발도상국에 가는 지원금도 끊겠다고 나섰다. 개도국의 산아제한을 위한 낙태 상담도 지원금지 대상에 올라 개발원조마저 보수의 잣대로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트럼프의 조치는 개발도상국, 분쟁지역에 사는 여성들의 고통만 가중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낙태를 포함한 가족계획 상담 등을 지원하는 국제단체에 연방정부 지원금을 끊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날은 여성이 낙태할 권리를 인정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다음날이기도 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낙태하는 여성을 처벌하겠다고 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기도 했고 대통령이 되면 낙태에 반대하는 대법관을 임명하겠다고 공언했다.


‘멕시코시티 룰’로 불리는 낙태 관련 단체 지원금지 정책은 1984년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처음 실시했다. 레이건이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발표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이후 정권에 따라 폐지와 부활을 거듭하면서 정쟁의 불씨가 돼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3년 취임하자마자 폐지했으나 후임자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되살려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다시 시행을 철회시켰다.


단체 지원철회 정책으로 가장 피해를 입는 건 개발도상국과 분쟁지역 등 의료환경이 열악한 곳에 사는 여성들이다. 가족계획을 지원하는 단체들이 운영하는 클리닉은 예산이 동결되면 문을 닫고 지원을 줄여야 한다. 에이즈 예방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개발도상국에서 연간 여성 2100만명이 의료진의 도움 없이 낙태를 하며, 이로 인해 숨지는 산모가 전 세계에서 사망하는 산모의 약 13%를 차지한다고 추산했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전 세계 수백만명의 여성들을 더욱 아프게 하는 일”이라며 비난했다.


미 연방정부는 가족계획, 성·생식기 질환 관리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국제단체에 연간 약 6억달러 예산을 책정해왔다. 덕분에 2700만명에 달하는 여성, 부부들이 피임 관련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낙태 시술을 위해 예산이 쓰인 적은 없었다. 1973년 의회가 가족계획을 목적으로 한 낙태시술에 미국의 해외원조단체 자금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미국 내 최대 가족계획 지원단체인 국제가족계획연맹(IPPF)은 그간 낙태시술에 필요한 지원은 자체 재원으로 충당해왔다. 그러나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낙태 관련 업무를 취급하기만 해도 전체 지원금을 끊도록 해 이 단체에 할당된 지원금 약 1억달러(약 1170억원)가 통째로 날아갈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