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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한 발'도 안 물러설 멕시코 "미국의 일방적인 조치 못 받아줘"



멕시코 일간지 엘우니베르살은 22일(현지시간) “고결한 성폭행범 틸러슨이 찾아왔다”는 제목의 사설을 냈다. 


이날 국경장벽 문제 등을 논의하러 멕시코에 도착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존 켈리 국토안보장관을 맞는 멕시코의 민심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이 신문은 사설에서 “멕시코는 국가주권이 침해당하는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미리 경고했다”고 강조했다. 


루이스 비데가라이 멕시코 외무장관은 이날 틸러슨과 켈리를 향해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멕시코 정부와 국민들은 그런 일방적인 조치들을 받아줄 필요가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국경장벽 건설에 이어 불법적으로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조리 멕시코로 추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자 응할 수 없다는 뜻을 못 박은 것이다. 그는 이날 만찬을 시작으로 틸러슨과 일전을 벌여야 한다. 


미 국토안보부는 21일 무슨 범죄를 저질렀든 범죄 경력이 있는 이민자는 모두 추방한다는 조치를 발표하고 대대적 단속에 나선다고 예고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 때 중범죄를 저지른 미등록 이민자만 추방하던 것에서 더 나아간 것이다. 특히 출신국과 상관없이 마지막으로 멕시코를 경유해 들어온 불법체류자는 전부 멕시코로 돌려보내겠다고 한 대목이 문제였다. 이는 이미 험악해진 회담 분위기에 불을 질렀다. 비데가라이 장관은 “멕시코 정부는 이민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이 문제를 유엔까지 끌고 갈 수 있다”고 밝혔다. 


멕시코가 이렇게 강경한 데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멕시코는 이미 더 나은 삶을 찾아 고향을 떠난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 중미 빈국 출신 이민자들로 넘쳐난다. 트럼프 정부가 국경을 닫아걸고 무차별적 추방을 본격화하면 ‘풍선효과’는 불 보듯 뻔하다. 미국으로 향하던 중미 출신 이민자들의 발길은 멕시코에서 멈추게 된다. 2015년 멕시코 당국 집계에 따르면 몰래 국경을 넘다 멕시코에서 체포된 사람만 17만명이다. 2년 새 2배가 됐다. 레나타 두비니 유엔난민기구(UNHCR) 미주국장은 “지난해 멕시코에 망명을 신청한 사람은 2015년에 비해 229%나 증가했다”고 말했다. 


만약 난민 러시로 멕시코 정부마저 이민자·난민 통제를 강화하면 불똥은 남미 국가들로 튄다. 하지만 우파 정부가 들어선 아르헨티나는 지난 1월 중범죄를 저지른 이민자들을 추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바람 잘 날 없는 브라질은 난민들을 받아들일 여력이 없다. 칠레는 전통적으로 이민자들에게 우호적이며 비교적 경제가 안정돼 있어 매력적인 피난처로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에는 페루, 볼리비아, 파라과이에서 건너온 이민자들과 저임금 경쟁을 해야 하는 광산 노동자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정치인들이 표심을 얻기 위해 칠레 우선주의를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