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이 독극물에 중독된 지 15분에서 20분 안에 사망했다고 말레이시아 보건장관이 26일(현지시간) 밝혔다. 세리 S. 수브라마니암 보건장관은 여성 용의자 2명이 사용한 독극물의 양이 매우 많아 김정남의 심장과 폐와 빨리 흡수됐고, 채 30분도 안 되는 새에 목숨을 앗아갔다고 설명했다.
지난 13일 김정남 피살에 사용된 독극물의 주성분은 VX로 불리는 신경작용제 N-2-디이소프로필아미노에틸 메틸포스포노티올레트다. 말레이시아 화학국은 김정남의 눈 점막과 얼굴 부검 샘플에서 VX가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호흡기나 점막, 피부 상처를 통해 흡수되는 VX는 10㎎만 투입돼도 사람 목숨을 잃게 만든다.
■VX공격 생존자 “눈앞 캄캄, 가슴 타들어가는 고통”
“눈앞이 캄캄해지고 가슴과 폐가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온몸에서 땀이 솟고 피부에 불이 붙은 것만 같았다.”
20여년 전 일본 옴진리교 신도로부터 VX 공격을 받았다가 혼수상태 끝에 살아난 나가오카 히로유키는 VX중독 증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가오카는 24일 NHK,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 1995년 1월 자택 인근에서 뒤통수에 VX공격을 받고 느꼈던 고통을 상세히 설명했다. 직접 맞지 않았고 점퍼 옷깃에 맞았을 뿐이지만 효과는 강력했다.
나가오카도 처음에는 김정남처럼 이렇다할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30분 정도 지나 집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VX가 신경계를 교란해 동공이 수축하면서 주변이 어두워져 보인 것이었다. 얼마 안 돼 가슴이 타는 듯이 뜨겁더니 그 기분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땀이 솟았다. 나가오카는 방바닥에 쓰러져 고통 속에 몸을 구르다가 이내 정신을 잃었다. 그는 2주가 지나서야 의식을 되찾았다.
나가오카는 옴진리교에 빠진 아들때문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부모들과 단체를 만들어 이끌다 옴진리교 신도들의 표적이 됐다. 나가오카는 목숨은 건졌지만 시력이 나빠졌고 오른팔이 마비되는 느낌을 계속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말레이시아 당국 “공항은 안전”
말레이시아 당국은 김정남이 VX로 피살된 쿠알라룸푸르 제2국제공항에서 잔류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26일 밝혔다.
경찰 감식팀과 원자력청, 소방당국은 이날 김정남 피습 현장인 출국장 무인발권기 주변과 그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찾아갔던 공항정보센터, 공항 내 클리닉 등을 집중 검점하고 제독작업을 했다. 세리 압둘 사마 마트 슬랑오르주 경찰청장은 “오전 1시45분쯤부터 1시간 정도 점검한 결과 위험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면서 “제2국제공항은 어떤 형태의 오염도 되지 않아 안전하다”고 말했다.
피살 사건 당일 김정남을 돌본 사람들도 검사 결과 이상이 없었다. 보건장관은 현재까지 공항에서 의료진이나 다른 승객들이 VX에 노출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마트 경찰청장은 인도네시아 여성 용의자 시티 아이샤가 13일 범행 직후 타고 달아난 택시에서 구토를 하긴 했지만 지금은 어떤 증상도 없다고 밝혔다.
■화학물질 발견된 콘도, 북한 용의자 4명 명의로 임대됐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VX의 출처를 추적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다수의 화학물질이 발견된 콘도가 사건직후 달아난 북한 용의자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남 피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지난 23일 쿠알라룸푸르 시내 잘란 클랑 라마 대로변의 한 콘도에서 30대 말레이시아 남성을 체포했다. 이 남성이 머물던 콘도에서 여러 물질의 화학물질이 발견됐는데, 경찰은 이 콘도가 북한 용의자들 명의로 임대됐다고 밝혔다. 이 곳에서 VX제조나 반입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26일 세리 압둘 사마 마트 슬랑오르주 경찰청장은 콘도에서 압수한 샘플 성분을 발표한 단계는 아니라면서도 사건 직후 도주한 4명의 북한 국적 용의자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콘도는 여성 용의자 2명에 이어 체포된 북한인 리정철의 거처와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만약 콘도에서 검출된 물질이 VX로 밝혀질 경우 북한이 김정날 피살 배후에 있다는 정황은 더욱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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