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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시리아 화학무기 안이한 제재…또 ‘대가’ 치른 건 어린이들

시리아 반군 거점지역인 북부 이들리브주 칸셰이칸 지역 주택가에 4일(현지시간) 정부군 소행으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공습으로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해 최소 58명이 숨졌다. 시리아 내전 발발 6년째로 접어든 올해 화학무기 공격으로 인한 최대 피해였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인권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사망자가 어린이 20명을 포함해 72명이라고 밝혔다. 사망자가 100명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유엔과 각국 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일제히 시리아 정부를 비난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5일 “화학무기 공격은 전쟁범죄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고 이날 안보리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이미 몇번이나 비슷한 일이 벌어졌음에도 시리아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은 채 눈을 감아온 탓에 결국 아이들만 희생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리아 반군거점 지역인 북부 이들리브주 칸셰이칸 지역 아이가 정부군 소행으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공습을 당한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반정부 시민단체인 이들리브미디어센터(IMC)가 4일(현지시간) 공개한 사진이다.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 실상이 처음 드러난 것은 2013년 8월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의 반군거점 지역 구타(Ghouta) 공격 때였다. 정부군은 사린가스 1000㎏을 살포해 최소 600명에서 최대 1300명의 민간인을 숨지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 대부분은 아이였다. 흰 천에 싸여 일렬로 놓인 아이들의 시신은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유엔 조사단이 들어가 사찰을 하고 각국이 일제히 화학무기 사용을 비난했지만 누구도 적극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유엔 조사단은 화학무기가 쓰였다고 인정하면서도 누구의 범행인지 명시하지 않았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저질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만 했다. 


[라운드업] 시리아 내전


그 후에 벌어진 일은 국제사회의 무책임과 무기력을 그대로 드러냈다. 오바마는 이미 2012년 8월 화학무기 사용은 ‘레드라인’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구타 공격 뒤에도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미국 내에서 대량살상무기(WMD)에 해당하는 화학무기를 쓴 만큼 공습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알아사드 정권은 발빠르게 화학무기금지조약에 가입하면서 공격을 피했다. 알아사드는 화학무기금지조약기구(OPCW)가 들어와 보관 중인 화학무기를 반출·폐기하게끔 허용했다. 



이후 이뤄진 과정은 블랙코미디에 가까웠다. OPCW는 2014년 6월23일 시리아 정부군이 가지고 있는 화학무기 저장고를 모두 제거했다고 밝혔다. 반정부 진영은 정부군의 화학무기가 완전히 폐기되지 않았다고 반발했으나, 국제사회는 이를 애써 무시했다. OPCW는 ‘시리아 화학무기를 없앤 공로’로 2013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이듬해 5월 당시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던 수전 라이스는 “시리아 화학무기의 92.5%가 제거됐다”면서 어떤 공습으로도 이룩하지 못한 성과라고 자찬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알아사드 정부가 민간인들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쓰고 있다는 보고가 잇달았다. 문제가 된 화학무기는 시리아 정부가 폐기를 약속한 물질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염소가스였다. 금지조약에 명시돼 있는 화학무기임에도 염소가스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리스트에는 수포작용제, 황겨자(황화디클로로디에틸), 사린가스, VX 등만 포함됐다. 심지어 리스트에 들어 있는 황겨자도 2015년 11월 사용됐다. 당시 이 무기를 쓴 것은 이슬람국가(IS)였다. 시리아 정부 측 화학무기가 그들 손에 흘러간 것으로 의심된다.


"나도 아버지처럼 천국에 가고 싶어요" 자살, 자해하는 시리아 아이들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 등은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했으나, 오바마 정부가 이라크에 이어 시리아로 전선을 넓히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그렇다 해도 화학무기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응이 안일했던 것은 분명하다. 화학무기를 사찰하고, 폐기했다고 했으나 그 과정은 철저하지 않았다. 유엔 안보리는 2015년 8월이 돼서야 OPCW와 유엔 조사단에 시리아 정부의 염소가스 사용실태를 조사할 권한을 부여했다.


알아사드 정권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면죄부를 받은 꼴이 됐다. 2015년 9월 말 러시아가 알아사드 정권을 위해 공습 등 군사지원을 시작한 이후 전세는 알아사드에게 매우 유리하게 흘러갔다. 


4일 인권단체들이 공개한 화학무기 피해자들의 모습은 처참하다. 경련을 일으키고 숨을 쉴 수 없게 된 아이들이 유령처럼 축 늘어져 있다. 범행에 쓰인 화학무기가 무엇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국제사회는 책임공방만 되풀이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은 아사드 정권의 소행이라고 규탄했으나, 시리아 정부와 러시아는 반군 탓으로 돌렸다. 시리아 국영 SANA통신은 “군은 화학무기를 쓰지 않았다”는 국방부 성명을 보도했다. 러시아 국방부도 5일 성명을 내고 “시리아 공군이 반군의 화학무기 공장을 공습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조사됐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