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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타뉴스]‘트럼프의 미국’ 새 용어사전…선거후스트레스장애(PESD), 대안 사실, 안티파

“너무 너무 화가 나요.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이에요.”


뉴스 보는 게 낙이었던 왈리 핑스턴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로 TV를 트는 것이 두렵다고 말한다. 연일 쏟아지는 트럼프 뉴스에 화가 치밀어올라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지자라서 그런 건 아니다. 핑스턴은 민주당 성향이 강한 캘리포니아주 산마테오에 살지만 이전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를 번갈아 찍는 등 중도성향의 유권자다. 하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는 일단 ‘가짜 뉴스(페이크 뉴스)’라고 말하고 보는 트럼프와 사실이 아닌 것을 ‘대안적 사실’이라고 말하는 정부의 궤변은 정치 성향과 별개로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핑스턴은 트럼프 뉴스 홍수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페이스북 계정까지 닫았다.

미국에서 핑스턴처럼 대선 이후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한 둘이 아니다. CNN은 충격적인 일을 겪고 나서 앓게 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빗대 선거후스트레스장애(PESD·Post-Election Stress Disorder)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트럼프 정부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20일(현지시간) 전했다. PESD말고도 트럼프 정부 들어서 만들어진 신조어나 다시 주목받은 용어는 많다. 이 용어들을 보면 트럼프 정부가 보인다.


캘리언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

캘리언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

켈리언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이 만든 신조어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이 대표적이다. 콘웨이는 지난달 22일 NBC와 인터뷰에서 전날 션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이 “트럼프 취임식 관람객이 역대 가장 많았다”고 한 발언을 옹호했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취임식 참석 인원에 대한 공식 집계는 없지만 워싱턴 전철 승객 수나 항공사진만 봐도 트럼프 정부의 주장은 사실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고 비판했다. 사회자가 거짓말이 아니냐고 지적하자 콘웨이는 “대변인은 대안적 사실을 제공한 것”이라고 답했다.

사회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안적 사실은 사실이 아니다. 거짓말이다”고 맞받아쳤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는 즉시 대안적 사실이라는 말의 뜻과 이런 신조어가 생겨난 이유를 설명하는 항목이 생겨났다. 미국의 권위 있는 사전 메리엄 웹스터는 웹페이지에 “사실은 실제로 존재하거나 객관적 현실로 여겨지는 것을 가리킨다”고 설명하는 글을 올렸다.

콘웨이는 있지도 않은 이슬람 국가 출신이 저지른 테러가 있었다고 주장해 비난을 샀다. 콘웨이는 오하이오 볼링그린에서 대학살이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지난 2일 MSNBC와 인터뷰에서 “볼링그린 대학살을 주도한 이라크인 2명이 버락 오바마 정부의 난민정착 프로그램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모르는 이유는 언론이 이를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볼링그린에서 무슬림의 테러로 사망한 사람은 없었다. 2011년 이라크인 2명이 알카에다에 무기를 보내려다 체포된 사례만 있을 뿐이다.


자신에 관한 부정적인 여론조사 보도는 모두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자신에 관한 부정적인 여론조사 보도는 모두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트럼프가 불리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입버릇처럼 페이크 뉴스라고 주장하는 통에 페이크 뉴스도 더욱 주목받게 됐다. 트럼프는 지난 6일에도 트위터에 부정적인 여론조사는 모두 페이크뉴스라면서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지지율이 더 높다고 보도한 CNN, ABC 등을 지목해 그 사례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안하지만 국민들은 국경통제와 입국자에 대한 철저한 배경조사를 원한다”고 썼다. 반이민 행정명령으로 고조되는 비난여론을 의식한 의도적인 여론몰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트럼프의 페이크 뉴스 논쟁은 지난달 극에 달했다. CNN, 버즈피드 등은 러시아 정부가 섹스 동영상 등 트럼프에게 불리한 정보를 쥐고 흔들려 했다는 정보당국 보고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지난달 11일 대통령 당선 후 처음 연 기자회견에서 CNN 기자를 향해 “당신 회사는 가짜”라고 공격하며 질문도 받지 않았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사전 메리엄 웹스터 홈페이지에 이날 하루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로 박수부대가 올라와 있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사전 메리엄 웹스터 홈페이지에 이날 하루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로 박수부대가 올라와 있다.

지난달 23일 메리엄 웹스터의 홈페이지에는 박수부대의 뜻풀이가 올라왔다. 같은 날 트럼프가 중앙정보국(CIA)을 방문해 연설할 당시 참석자들 중 CIA 직원이 아닌 트럼프 지지자들이 섞여 있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단어 검색이 폭주했다면서 낱말 뜻을 올린 것이다. CBS는 이날 CIA 관계자 말을 인용해 21일 트럼프가 CIA를 방문했을 당시 청중 40여명은 트럼프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이크 폼페오 국장 등이 초청한 사람들이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이전에도 트럼프 측이 박수부대를 끌어들였다고 전했다. 2015년 6월16일 대선 출마 선언을 할 때는 전문 배우를 고용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트럼프 캠프의 선거본부장이었던 코리 르완도스키는 박수부대 고용에 연관된 캐스팅 주선 업체인 엑스트라 마일과 고담 거버먼트 릴레이션스(이하 고담)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다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소송이 제기되자 태도가 달라졌다. 캠프는 고담에 1만2000달러를 지불했다고 인정했다.

배타적인 백인 민족주의를 앞세운 ‘대안우파(알트라이트·alt-right)’는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부상한 핫키워드 중 하나다. 알트라이트는 미국 주류 보수의 가치를 거부하며 스스로 대안 우파라 칭한다. 알트라이트가 다시 주목받은 이유는 그 선봉에 서서 극우매체 브레이트바트를 운영해 온 스티븐 배넌이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됐기 때문이다. 브레이트바트는 ‘미국판 일베’로 불릴 정도로 백인 우월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를 강조한다. 배넌은 전 세계를 혼란과 분노로 몰아넣은 반이민 행정명령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티파(Antifa)’는 알트라이트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다. 1920년대 유럽국에서 일어난 안티파시즘 운동에서 착안한 안티파는 알트라이트처럼 극단적인 논리로 맞서며 과격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선거기간 구호로 내건 ‘메이크 아메리카 그레이트 어게인’을 새겨넣은 빨간 모자를 불태우고, 극우주의자들을 폭행하기도 한다. 알트라이트의 의견에 동조하는 글을 쓰거나 활동한 사람의 신원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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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