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가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전환한 이후 처음 열린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수도 앙카라를 비롯해 3대 도시 시장 자리를 모두 야당에 내줬다고 일간 휘리예트 등이 보도했다. 이번 선거는 지난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이후 처음 치러진 전국단위 선거였다. 에르도안 정부 중간평가 성격이 강했던 만큼 에르도안 리더십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여당 정의개발당(AKP)은 1일 오후 1시 개표가 99.9% 진행된 가운데 44.3%를 득표하면서 30.1%에 그친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을 따돌리고 전체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 광역시장 15명, 주지사 24명 등 광역단체장 당선인 숫자도 CHP(광역시장 11명·주지사 10명)에 2배 가까이 많았다. 하지만 민심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인구 1500만명의 최대 도시 이스탄불, 수도 앙카라 등 승부처로 꼽혔던 곳에서 모두 패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AKP는 이스탄불 시장 후보로 비날리 이을드름 전 총리(득표율 48.5%)를 내세워 개표가 90% 이상 진행될 때까지 선두를 유지했다. 하지만 개표 막판 CHP 후보 에크렘 이마모을루(48.8%)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선거 지원 유세 내내 “누가 이기든 이스탄불의 승자가 터키 전체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말하며 이곳에서 총력전을 펼쳤다. AKP 소속으로 앙카라 시장에 도전한 메흐메트 외자세키 전 환경장관(47.1%)도 CHP 후보 만수르 야바시(50.9%)에게 패했다. 여당이 앙카라에서 패한 것은 25년 만에 처음이다. 이즈미르 시장 후보로 나선 니하트 제이베치 전 경제장관(38.6%)은 CHP 후보에게 20%포인트 가까운 격차로 졌다.
AKP는 에르도안을 총리에 오르게 한 2002년 총선부터 이후 모든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정부가 언론을 90% 이상 장악하고,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쿠르드족 정당 주요 인물들이 대부분 체포되거나 구금되는 등 여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이번 선거결과는 사실상 에르도안 대통령의 패배라고 BBC는 평가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31일 오후 10시쯤 TV연설에서 “일부 도시에서 졌지만 이것은 민주주의에 필요한 것”이라며 “내일 아침부터 우리의 결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보완하는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에르도안 정부가 경제난에 결국 발목을 잡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터키는 지난해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을 쿠데타 협력 혐의로 구금했다가 미국에 관세폭탄을 맞으며 리라화 폭락 등 경제위기에 처했다. 물가와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서민들은 경제난에 시달렸다. 터키는 지난 2분기 연속 역성장에 진입했다. 에르도안이 총리와 대통령을 번갈아 가며 집권한 16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알자지라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슬람 전통을 강조하고 쿠르드 분리주의 세력의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표를 결집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25년 전 자신이 시장으로 선출되면서 정계 주류로 진입했던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도 패하면서 그의 리더십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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