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을 국제법상 어느 나라 영토도 아닌 예루살렘으로 옮긴 지 14일(현지시간)로 1년째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지난 3월 시리아 남서부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영토주권까지 인정하는 등 지난 1년간 중동지역에 긴장만 고조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다음달 발표할 예정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계획도 역내 긴장 수위만 높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제사회 평화해법인 ‘두 국가 해법’을 무시하고 팔레스타인을 ‘반쪽’ 국가로 만드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현지 일간 이스라엘하욤은 이·팔 평화계획과 관련해 이스라엘 외교부가 미국 정부와 논의한 내용을 담은 문건을 입수해 지난 7일 공개했다. 문건에 따르면 이스라엘 영토는 현재보다 훨씬 넓어진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현재 주민 거주지역인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세우되 서안 내 이스라엘 정착촌은 이스라엘 영토로 병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스라엘 정착촌은 국제법상 불법이지만 크기는 서안 전체 면적의 60%가 넘는다. 이를 이스라엘 영토로 병합하면 팔레스타인은 가자지구를 합친다고 해도 원래 희망했던 영토의 절반가량을 빼앗기게 된다.
미국의 구상에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통치를 공식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현재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 40만명은 팔레스타인 국가 시민이지만 영토 관할권은 지금처럼 이스라엘이 가져가도록 했다.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국가로 인정받고 향후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겠다는 팔레스타인의 계획을 원천봉쇄하는 셈이다. 예루살렘 거주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영주권은 갖지만 투표권 등 핵심 시민권은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되 군사적으로 아무런 권한도 주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팔레스타인은 군대를 조직할 수 없고 치안 유지를 위해 경찰만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이스라엘과의 군사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방어 책임은 이스라엘 군대가 진다. 이 같은 계획은 최근 이스라엘과 군사적 충돌 수위를 높이고 있는 가자지구 무장정파 하마스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마스는 협정이 체결되는 대로 모든 무기를 이집트에 반납해야 한다.
미국은 팔레스타인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되 평화계획을 거부할 경우 군사적으로 응징하겠다며 압박했다. 미국은 걸프국가들과 함께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필요한 비용 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평화계획을 하마스가 거절할 경우 팔레스타인에 대한 전쟁을 수행하고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전폭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유대인인 쿠슈너의 평화계획 구상은 친이스라엘 정책의 연장선으로 이·팔 양측의 대화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팔레스타인 리야드 알말리키 외무장관은 지난 9일 유엔 회의석상에서 “이것(쿠슈너의 평화계획 구상)은 평화계획이 아니라 항복 조건을 말한 것”이라며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성일광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원(한국이스라엘학회장)은 “쿠슈너는 동예루살렘 지위 인정, 이스라엘인 정착촌 문제의 민감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극단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은 하마스의 정치력만 높여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친이스라엘 싱크탱크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조차 팔레스타인 협상파와 대화의 불씨를 꺼버리는 조치로 평화계획 발표를 6월 이후로 늦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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