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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이양희 유엔 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 인터뷰] 한국, 그리고 국제사회는 왜 미얀마 로힝야 난민사태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한국의 동남아시아 이웃 국가 방글라데시에는 세계 최대규모의 난민촌이 있다. 바로 방글라데시 남동부 해안도시 콕스바자르에 위치한 쿠투팔롱 로힝야 난민촌이다. 현재 약 100만명의 난민들이 이곳에서 제대로된 의료 서비스나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근근이 살아간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우기가 시작되는데 언덕 지대 비탈길을 따라 세워진 난민캠프에 사는 사람들은 홍수와 산사태 피해 우려로 밤잠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양희 유엔 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호암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로힝야 난민들이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대규모 난민 발생의 근본 원인인 미얀마 정부의 무차별 학살·탄압에 대해 국제사회는 침묵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미얀마에 부채의식을 느낄 만한 지점도 없고, 그저 먼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로 우리에게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걸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름도 생소한 중동 예멘에서 난민신청자 500여 명이 제주도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난민이란 존재 자체가 낯설었다. 한국인들은 지금 이 시점에서 왜 로힝야 난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걸까. 오는 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앞두고 지난 15일 이양희 유엔 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을 만나 물었다. 

 

이양희 보고관은 로힝야 난민촌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포섭돼 동남아 지역 글로벌 테러리즘의 근거지가 될 것을 우려했다. 이 보고관은 "쿠투팔롱 난민촌은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 난민의 55%가 18세 미만 청소년이다. 2012년부터 난민촌에 격리된 아이들은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교육도 못받고 기술도 없는 아이들의 상황은 절망적”이라면서 “이라크, 시리아에서 패퇴한 다음 다른 곳에서 세력을 재건하겠다는 이슬람국가(IS)가 어디로 가겠느냐”고 반문했다. 

 

최근 동남아 이슬람권 국가들에서는 IS를 추종하는 세력들의 테러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지난 4월 최소 259명의 사망자를 낸 스리랑카 부활절 연쇄 폭탄테러는 2011년 9·11테러 이후 이라크·시리아 밖에서 일어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중 희생자가 가장 많았다. 이 보고관은 한국도 언제 이런 테러의 희생양이 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 정부는 로힝야족을 사지로 몰고 있는 미얀마 아웅산 수지 정부에 이렇다 할 비판을 하지 않고 있다. 이 보고관은 "미얀마와 인접한 동남아 국가들은 물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는 로힝야 학살 주체인 미얀마 군부 핵심인사에 대한 제재 결의안 채택까지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역사·정치적인 맥락이 복잡하게 얽힌 일에 섣불리 나서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는 이유에서다. 

 

로힝야족은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려고 할 때 영국 편에 섰다. 이런 이유로 독립을 원했던 다수 민족 버마족들의 로힝야족에 대한 분노와 잔혹행위를 응징이라며 옹호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 보고관은 “난민이 어떻게 생겨났고 그 사람들이 왜 핍박을 받게 됐는지 역사적인 배경을 알 필요는 없다”면서 “이 사람들이 현재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핍박받는 것에 대해서는 지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보고관은 “내정간섭이라는 말을 쓰는 나라일수록 민주화가 덜 된 나라들이 많다”면서 실은 미얀마에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달려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얀마가 제재에 노출되면 교역·투자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 것을 염려한다는 것이다. 미얀마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로힝야족들의 주 거주지역인 서부 라카인주는 우라늄과 티타늄이 난다. 벵골만을 접한 해안가에서는 천연가스와 석유도 시추할 수 있다. 미얀마 정부가 탄압하는 다른 소수민족 카친족이 사는 북부 카친주는 귀금속인 비취의 세계적인 산지다. 이라와디강이 흐르는 미얀마는 수자원도 풍부하다. 

 

중국은 자국으로 대량 전기공급을 위해 이라와디강 수원에 밋소웅댐과 수력발전소를 지으려고 한다. 2016년 이 지역 소수민족인 카친족은 당시 17년간 이어져온 정부군과 정전협정까지 깨뜨리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구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도 중국은 이런 반대 움직임을 무마해 줄 미얀마 군부의 협조가 절실하다. 이 보고관은 "중국은 해적이 자주 출몰하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 사이 말라카 해협을 피해 남부 윈난성 쿤밍에서부터 미얀마 중부 만달레이를 지나 로힝야족 거주지인 서부 라카인주 차우퓨, 남부 안다만해를 잇는 동남아 교역료를 만들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미얀마 수지 정부의 로힝야 탄압에 눈감는 이유다. 이 보고관은 동남아 국가들은 물론 미얀마에 무기를 파는 러시아도 수지 정부의 로힝야 학살 행태에 침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로힝야족들이 쫓겨난 그 자리에 한국 대기업들이 들어가서 고층 건물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창피하다”고 말했다. 

 

이 보고관은 당장 경제적 이익에 눈이 멀어 인권이라는 기본 원칙을 저버린다면 로힝야 난민사태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혹은 동남아 글로벌 난민 위기의 시발점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보고관은 "로힝야 난민사태를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기 위해서는 힘들고 더디더라도 미얀마 정부를 압박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유엔 총회 결의안을 통과시켜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벌어진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 실태를 조사하는 위원회를 꾸리고,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학살 주동자를 제소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수집하는 기구를 만든 것은 국제사회의 일치된 단결이 이뤄낸 성과라고 꼽았다. 이 보고관은 “한국 정부의 원칙과 접근도 인권이 기반이라는 것을 내세웠으면 좋겠다”면서 “미얀마의 교육·의료·보건부문을 지원하면서 인권 하나만큼은 개선하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