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가 러시아의 중재 아래 시리아 북부 일부 지역에서 미국의 대테러전 파트너였던 쿠르드민병대(YPG)를 몰아내는 조건으로 휴전에 합의했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터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마라톤 회담 끝에 자신들이 제안한 안전지대에서 YPG를 150시간 내로 철수시키고, 터키·러시아군이 공동으로 순찰하는 데 합의했다고 알자지라 등이 보도했다.
쿠르드족은 애써 이슬람국가(IS)에 맞서 싸워 얻은 땅에서 기약 없이 쫓겨나게 됐다. 이들에게는 비극이지만 터키와 러시아에게는 여러모로 ‘윈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터키는 국내 쿠르드 분리독립주의 세력과 YPG의 연계를 상당 부분 차단할 수 있게 됐다. 이날 합의에 따르면 YPG는 시리아 북부 국경도시 탈아브야드에서 북동부 라스알아인까지 이르는 길이 120㎞, 폭 32㎞에 구간에서 물러나야만 한다. 당초 터키가 주장했던 안전지대 면적의 4분의 1 정도다. 하지만 러시아가 공동순찰에 나서기로 하고 안전지대 이외 지역에서도 YPG의 무장을 해제하겠다고 약속하면서 YPG 무력화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게 됐다.
터키는 YPG를 국내 쿠르드 분리주의 무장정파 쿠르드노동자(PKK)와 연계된 테러세력으로 규정해왔다. 하지만 터키의 동맹국인 미국이 그동안 이를 무시하고 YPG와 함께 IS와 맞서 싸우고 시리아에 주둔하면서 함부로 YPG를 공격할 수 없었다.
러시아는 터키로부터 휴전 약속을 이끌어내면서 중재자로서 위상을 더욱 높였다. 이날 합의는 미국이 중재한 휴전이 마감되기 불과 몇시간 전에 이뤄졌다.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며 이슬람 수니파 반군과 수많은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아가게 한 러시아가 평화 전도사로 올라서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소치에서 에르도안 대통령과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양국은 시리아의 영토주권과 통합을 지켜내기로 합의했다”고 말하며 이번 합의를 러시아 정부의 외교적 성과로 자찬했다.
러시아는 실리도 챙겼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지원하는 시리아 정부군이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쿠르드 지역에 입성하게 만들었다. 푸틴 대통령은 YPG 무장해제와 관련해서 터키에 아사드 정권과 직접 대화하라고 당부했다. 이미 시리아 정부군은 터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달라는 YPG 요청으로 내전 기간 한 번도 진입하지 못했던 전략적 요충지 만비즈에 들어가 있다.
CNN은 러시아가 아사드 정권과 터키가 쿠르드 지역에 머무르게 해 세력 군형을 이루면서, 자신들의 최우선 순위인 시리아 내 체첸 반군 세력과 싸움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체첸 반군은 시리아 내전이 본격화된 2012년 시리아로 들어가 IS를 비롯해 다수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는 이번 합의로 최근 터키에 자국산 방공미사일 시스템 S-400을 인도하는 등 군사·경제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 모드도 이어가게 됐다.
한편 양국의 휴전합의 국면에서 최대 패자는 미국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은 대테러전 파트너 YPG를 버리면서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은 터키의 쿠르드 공격 시점에 발맞춰 시리아를 떠나 이라크로 떠나는 미군 행렬을 향해 돌과 썩은 음식을 던지며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했다. 미국은 시리아에서 주둔하고 있던 약 1000명 병력 중 일부인 200여명을 남부에 남겨두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주로 유전지대 보호 목적으로 여전히 자국 이익에 골몰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라크도 미군을 반기지 않았다. 미국은 대테러전을 이어간다는 명분으로 시리아 주둔 병력 대부분을 이라크 서부로 재배치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란 지원을 받는 이라크 시아파 정부는 미군 주둔을 승인한 바가 없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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